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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r 08. 2022

자유의 달걀과 젓갈없는 나물에 대하여


그녀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방에 갇혀 한평생 출산만 한다.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켜놓은 조명 때문에 제대로 푹 자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뇌는 쪼그라들어 버렸는지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하루빨리 자신의 출산능력이 다해 쓸모가 없어지길 기다릴 뿐이다. 옆 방에서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것들이 팔 한번 펴지 못한채 고기가 되어 실려 나간다.


그는 좋은 등급을 받아 몸값을 올리기 위해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농부는 자꾸만 고칼로리 음식을 준다. 조금 걷기도 하고 신선한 야채도 먹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 뱃살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이젠 지방간도 생긴 것 같지만 농부는 그래야 그가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A 옆에 플러스, 또 플러스 하나 더. '투뿔등심'이 되기 위해 오늘도 그는 풀 대신 옥수수를 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는 진실이 있다. 우리에게 훌륭한 단백질과 먹는 즐거움을 주는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문제. TV와 인터넷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양계장과 축사의 끔찍한 현실은 잠시동안의 숙연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건 정말 '잠시'뿐이었다. 닭들이 너무 불쌍해ㅠㅠ 하지만 3배 넘게 비싼 동물복지 달걀을 사먹자니 내 복지가 더 문제인걸. 내가 살면서 달걀을 얼마나 먹는다고. 한우 등급이 저런 식으로 매겨지는구나. 진짜 무식하고 야만적이네. 하지만 입안에서 눈녹듯 사라지는 화려한 마블링의 소고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지. 그래, 자주 먹지도 못하는데 뭐 어때. 늘 그런 식으로 결론이 났다. '동물복지'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다. 그런건 나보다 더 돈도 많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 실천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값싼 달걀과 한우 마블링의 비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그래서 뭐?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인간은 내가 애초에 상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의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역시 '잠시'뿐이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의식의 흐름을 거치는 듯했다.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싶어 어쩐지 위로도 됐다.


동물복지 문제가 꾸준히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바뀌는 건 별로 없었다. 달걀은 마땅히 우리에게 가성비 갑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식재료로 남아야 했다. 2만원이 훌쩍 넘는 치킨을 투덜거리며 주문하면서도 동물복지 달걀에는 돈 쓰기가 그렇게 아깝다. 지금의 한우 등급 기준을 바꾸려면 투뿔등심 보이콧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방이 줄줄 흐르는 한우를 너무 사랑하고 내가 먹는 한우 등급이 곧 내 인생의 등급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자유의 달걀'만을 먹던 후배가 있었다. 달걀과 우유를 먹지 않기 위해 빵을 직접 만들어먹던 그가 어느날 자랑스레 달걀을 먹고 있길래 이제 채식을 포기했냐고 그럴줄 알았다는듯 물었다. 나의 비웃음을 다시 비웃으며 그는 조근조근 설명했다. 이건 자유의 달걀이라고. 넓은 초지를 마음껏 뛰놀며 자란 닭들이 낳은 달걀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맛있게 먹어. 그와의 이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나의 안주거리가 됐다. 이렇게까지 하는 유별난 사람도 있다며 재밌다는 듯 이야기하고 다녔다.


학부생 시절,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던 홍대 펑크족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동기와 함께 그들을 주제로 1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과제를 하고 있었다. 한 학기동안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렇게 지금은 사라진 홍대 앞 마지막 펑크족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들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밥을 시켜먹는데, 무리 중 한명이 조용히 도시락을 꺼냈다. 그는 완벽한 비건이었다. 나물에 들어가는 젓갈도 먹지 않기 위해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먹는다고 했다. 그의 팔에 화려하게 새겨진 타투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무언가 동물복지와 채식에 관한 문구였다. 채식의 범주 안에 나물 속 젓갈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에 놀라운 감정이 잠시 스쳐지나가고 곧 되게 피곤하게 산다,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입밖으로 꺼내 말하진 않았다. 난 과제를 해야 했고,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그 역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것이 펑크족의 문화라며 예쁘게 포장해서 과제로 제출했다.




양평의 전원주택에서 아이 넷을 키우고 있는 친구 부부는 내가 갈때면 정성스럽게 바베큐를 준비한다. 친구 집이지만 어디 펜션에 놀러간듯이 세상 즐겁다. 게다가 내가 야채를 잘 먹지 않는걸 아는 친구는 100% 육식으로만 식탁을 가득 채워줬다. 그렇다. 나는 고기를 먹을 때 쌈야채를 거의 먹지 않는 지독한 육식파였다. 고기를 야채에 싸먹으면 고기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내가 상추를 집어 먹는 것은 소주와 함께 먹을 안주가 다 떨어졌을 때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 엄마로서 양심(?) 때문이었는지 어느날은 친구가 양파를 함께 식탁에 출연시켰는데, 새까맣게 다 타버릴 때까지 내가 손도 대지 않는걸 보고 다시는 야채를 사지 않겠노라 친구는 선언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 변했다. 고기를 한 점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야채도, 밥도, 된장찌개도 안 먹던 내가 고기를 피하기 시작했다. 도축되어 있는 고기를 보면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것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살 형편이 안된다면 그냥 안 먹고 만다. 아직은 사회에서 부대끼며 생존해야 하기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깃집을 가야할 상황에서 면전에 대놓고 '저 고기 안 먹어요' 할 용기는 없지만, 나에게 메뉴 선택권이 있거나 혼밥을 할 땐 절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생각보다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먹지 않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경험이 나에게 강한 동기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넉달 전 어느날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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