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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19. 2022

소고기는 맛이 없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내가 먹고 싶어서 간건 아니고 이제 막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온 이 나라 청년들에게 고기를 사주는 행사(?)를 주관하게 되면서 가게 된 것이었다. 무슨 그런 행사가 다 있나 싶을지도 모르겠으나 오늘 샌드위치 하나밖에 못 먹었다며 무섭게 고기를 먹어치우는 청년들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요즘 군대가 많이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을 떠나 1년 넘게 낯선 곳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의 혼란과 불안감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생물학적인 이유로 그런 고통을 면제받은 나 같은 사람은 내 돈도 아니고 공금으로 고기를 사주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러니 메뉴 선택도 나의 기호보다는 왕성한 식욕과 에너지를 가진 이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철저히 맞춰서 골랐다.


한 사람당 2인분은 거뜬히 클리어하고 공기밥과 냉면으로 탄수화물까지 넉넉하게 보충한 청년들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며 만족스런 얼굴로 귀가길에 올랐다.


'그래, 너네가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나는 고기를 거의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20대 청년들이 내 몫까지 다 먹어버려서가 아니라 (물론 실제로 그러기는 했지만) 소고기 특유의 냄새와 기름기가 영 불편했다. 특히 내가 그렇게 좋아해 마지 않았던 육회는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소고기는 맛이 없어."


어느 요리 유튜버가 음식으로 이상형 월드컵을 하면서 연신 이러한 이유를 대며 가차없이 소고기가 들어간 음식들을 탈락시켰다. 시청자들은 말이냐 방구냐 항의했지만 그는 번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선택들을 지지했다.


그것은 소고기의 요리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데서 찾은 반증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만 봐도 그냥 불판에 구워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육회, 불고기, 산적, 육전, 갈비찜, 전골 등, 쪄서 먹고 삶아서 먹고 날로 먹고 양념해먹고 밀가루옷을 입혀서 먹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어떨까. 그냥 구워먹거나 삶아먹거나, 혹은 조금 공을 들여서 요리한다고 해도 굽거나 삶기 전에 양념을 조금 한다는 정도이지 않나.


이런 사정은 서구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스테이크는 그냥 고기덩어리 구워서 대충 소스를 올린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공이 들어가는 요리다. 우선 굽기 전부터 올리브유와 소금 따위로 예쁘게 마사지(마리네이드)를 시켜준다. 다음은 프라이팬의 온도와 고기의 한 면을 익혀내는 시간을 신중히 계산해 구워낸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고기 속의 온도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불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레스팅)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이 여기에 어울리는 소스와 가니쉬를 재빠르게 준비하는 스피드 역시 필요하다.


좀 더 맛있는 스테이크를 위해 드라이에이징, 수비드 따위의 고급 요리법도 등판했다. 요리에 전혀 취미가 없는 내가 이런 잡다한 지식을 알고 있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스타셰프들의 열정적인 마케팅과 유튜브 덕분이다. 수비드는 최대 72시간동안 저온의 물 속에서 재료를 익히는 것이고, 드라이에이징은 몇주 동안이나 일정한 조건의 환경에서 고기를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소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영국의 어느 악명 높은 셰프 덕분에 비프웰링턴이란 낯선 남의 나라 소고기 요리도 다 알게 됐다.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고기로 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번거로운 음식이 아닐까 싶다. 소고기에 푸아그라와 버섯으로 만든 페이스트를 바르고 페이스트리 반죽을 입혀서 굽는다, 라는게 그 레시피인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우면 이 요리가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거다. 음식으로 알려지기 참 어려운 나라인 영국의 요리가 우리나라에서까지 레디밀로 팔리게 된데는, 그 까다로운 조리과정이 맛과 비주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려놓은 탓도 있을거라 믿는다.




나는 요리 연구가도 아니고 소고기가 유독 요리법이 다양하다는 걸 아주 강력하게 주장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소고기가 정말 맛이 없기 때문이다. '소고기'란 그 이름이 가진 아름다운 아우라를 좀 걷어내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고기의 '맛있음'은 기름맛이다. 솔직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한우의 등급 기준부터 마블링, 즉 기름이니까 말이다.


이 기름을 끼게 하기 위해 동원되는 갖가지 편법들 때문에 소들이 본성을 거스르는 먹이와 사육환경을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초원에서 방목되어 풀을 먹고 자랐다는 목초육을 사먹어 보기도 했다. 일단 고기 자체가 눈에 띄게 기름기가 적다. 이것을 특별히 요리하지 않고 그냥 구워서 소금에 찍어먹으니 뭐랄까, 미식의 즐거움은 1도 없고 단지 필요에 의해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름기가 없는 소고기는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시간, 수십일을 투자해 고기를 숙성시키고 온갖 양념과 비싼 식재료를 동원해 번거롭기 짝이 없는 조리과정을 거치는 것 아닐까. 그만큼 음식값은 올라갈 수 밖에 없으며, 이 비싼 음식을 팔기 위해선 그걸 사 먹을 사람들이 올만한 비싼 동네에 레스토랑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렇게 소고기는 '고급요리'로서 왕좌를 공고히 했고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됐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한우 사줄께."


그러니 이 한 마디가 부탁이나 사과, 혹은 군복무 같은 노고를 치하하는 모든 제스처를 훌륭히 대체하고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한우를 그만 먹어도   같다.  많은 돈을 내고  많은 기름을 먹을 이유가 없고, 더구나   많은 기름을 위해 소들을 괴롭히는  동참하고 싶지 않아졌다. 맛이 없는 고기를 굳이 맛있게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세상은 먹을게 넘쳐나니까.


혹시 나에게 부탁이나 사과를 해야 하거나, 노고를 치하하고 싶은 분들은 다른 비싼 음식을 사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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