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재배기를 집에 들이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것을 어디에 두느냐는 것. 이미 우리집은 온갖 살림살이로 포화 상태였는데, 여기에 옛날 30인치 브라운관 티비 같이 생긴 녀석이 하나 더 들어와야 하는 거였다. 결국 주방의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전자렌지가 하부장 속으로 쫓겨났다. 이 전자렌지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던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오랜 룸메이트다. 이제는 신기술을 장착한 뉴페이스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것 같아 어쩐지 안쓰러웠지만, 세상의 섭리가 다 그런거 아니겠소.
우리집을 포화 상태로 만들고 있는 주범 중 하나는 거실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6인용 식탁이다. 6인용 식탁은 나의 로망이었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식탁과 거실테이블과 책상이 왜 굳이 따로따로 있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식탁에서 숙제를 하고, 거실테이블에서 밥을 먹으며,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곤 하지 않나.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아주 넓고 단순한 형태의 탁자 하나만 있으면 거실에서 훨씬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몇명이나 살아요??"
이 6인용 식탁이 처음 집에 왔던 날, 배송기사님이 숨을 헉헉대며 던진 첫 마디였다. 도대체 몇명이서 살길래 이렇게 큰 식탁을 쓰냐는 원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네모 반듯한 상판과 투박한 다리가 통짜로 붙어 있는 이 거대한 가구를 기사님 한분이 혼자 이고지고 오신게 나는 더 충격이었다.
한동한 이 6인용 식탁은 우리집 거실의 시선강탈자였다. 집이 좁아보이는 효과는 덤이었다. 그러다 전자렌지의 숭고한 희생으로 식물재배기가 주방 홈바 위에 화려한 둥지를 틀면서 우리집 얼굴마담은 투톱 체제로 바뀌게 됐다.
식물재배기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우람한 덩치를 갖고 있었다. 이걸 설치해주러 오신 기사님은 내가 미리 정리해놓은 홈바 위에 식물재배기를 올리고 모종들을 아기 다루듯 정성스레 식물재배기 속으로 이사시키셨다. 아이스박스 속에 고이 모셔온 모종에 스티로폼 비슷한 무언가로 줄기와 뿌리 사이를 한번 감싼 후, 식물재배기에 안정적으로 꽂기 위해 필요한듯한 특수한 모양의 틀에 모종을 하나하나 끼워야 하는 매우 귀찮은 작업이었다. 모종 이사가 끝나면 아래쪽 수조에 물을 채우고 액체로 된 양분을 부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 모종들은 두달에 한번씩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걸 또 이렇게 한땀한땀 기사님이 심어주고 가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보통 이런 기사님들의 방문은 평일 낮시간밖에 옵션이 없다. 기사님들도 저녁 있는 삶을 사셔야 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나도 낮에 밥벌이를 하러 나가야 하는 입장이라 매우 곤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모종을 심으면 안되냐고 물었다. 그 순간 기사님의 얼굴에서 '그거 아주 반가운 소리'란 듯한 표정이 스쳐지나간 것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을거다.
내가 이 신문물을 발견한 것은 '가정용 스마트팜'이라고 검색하면서였지만 딱히 스마트한 부분은 없었다. 그냥 셋팅해놓은 시간에 맞춰서 LED 조명이 켜졌다가 꺼지고 간간이 물을 순환시키는 듯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LED 조명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밝았다. 저녁에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이 LED 조명 때문에 신경이 약간 거슬릴 정도였다. 식물이 자라는데 이렇게나 많은 빛이 필요하구나 라는,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도시촌년다운 생각을 했다.
식물재배기는 우리집 얼굴마담의 역할을 아주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보통 집에 손님이 오면 6인용 식탁에 대한 코멘트를 가장 먼저 하곤 했었는데, 이제 그 관심의 70% 정도를 식물재배기에게 뺏겼다. 흙냄새 나는 진짜 텃밭의 낭만은 없지만 집안에 나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설렜다.
이후부터 저녁 식사준비를 하는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사실 원래도 무슨 대단한 요리를 해먹진 않았어서 식사준비랄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야채를 수확해서 그릇에 담는' 행위를 하며 오늘 하루의 리듬이 한 템포 늦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고 집에 와서도 이런저런 집안일을 해치우느라 숨이 가쁜 와중에, 식물재배기의 덮개를 열어 오늘은 어떤 잎사귀를 먹을까 살피고 한장씩 조심스레 뜯어내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느려지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지나니 나도 모르게 그 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집에 식물재배기가 있다고 하면 야채가 무한정 자라나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적정량만 수확하지 않고 잎파리가 자라나는 족족 뜯어먹으면 식물은 죽는다는걸 이제서야 안 나는 정말이지 도시촌년이었다. 채소마다 자라나는 속도가 조금씩 달라서 내버려두면 나무가 될 기세의 아이들이 있는 반면, 감질나게 한 잎파리씩 수줍게 내미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차이를 그저 답답하게만 여기고 먹을만하다 싶으면 되는대로 뜯어내 먹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수줍음이 많았던 채소들은 더 이상 잎을 피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잎을 좀 남겨두시는 게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특정 채소들만 자꾸 죽자 내가 모종을 배송해주시는 기사님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솔직히 말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과도하게 착취를 당하면 GG를 선언하는건 다 똑같았다.
며칠전에는 모종들이 집밖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쳤는지 식물재배기에 옮기고 나서도 시들시들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떡하지, 하고 물과 양분을 좀더 채워준 후 출근을 했는데 저녁에 와서 봤더니 고맙게도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 있었다. 한번은 실수로 LED조명을 끄는 일도 있었다. 그 상태로 한나절 정도가 지나자 채소들이 잎을 한껏 움츠리고 있는 상태가 됐다. 놀란 나는 그제서야 내가 조명을 꺼버렸단걸 깨닫고 부랴부랴 원상복구 시켰다. 그랬더니 다시 잎을 활짝 펼치는 기특한 모습을 또 보여주었다.
파리여행으로 일주일 집을 비웠을 땐 정말 소름끼치는 장면을 연출해보이기도 했다. 나는 야채들의 성장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주일 정도는 수확을 하지 않아도 별로 많이 자라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거의 밀림이 되다시피한 식물재배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착취하는 인간이 없으니 그야말로 신나게 자라났던 모양이었다.
"식물은 생명이 아니야?"
보통 동물복지를 위해서 채식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반대쪽 '육식은 절대 포기못해' 진영이 내세우는 논리다. 물론 당연히 식물은 생명이다. 너무나도 생명임을 이 식물재배기를 사용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보통 식물재배기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야채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서 더 많이 먹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듯하다. 내가 직접 키운다, 신기하고 애정이 간다, 그래서 더 많이 먹는다 라는 이 3단 콤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인과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식물도 생명이다'라는 사실 하나만 배울 수 있어도 충분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시촌년, 촌놈으로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