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적인 고도와 그에 수반되는 난이도, 게다가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불편하다는악조건들이 겹쳐 있다. 그러기에 웬만히 산을 타는 사람들이 아니면 1년에 한 번도 찾지 않는 산이었다.
그러던 중에 일반인들에게 임도가 개방되고,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등 접근성이 좋아졌고, 9개의 산 중에 서너 곳이 모 등산의류 기업의 100대 명산 오르기와 산림청의 300대 명산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 그나마 전국 등산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취미 수준으로 가벼운 산을 찾는 생활 등산객들에게는 접근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장소였다.
실로, 산 다운 산이었다. 제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산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산이었다.
영남알프스 9봉 오르기
그랬던 이곳이 지난 2019년을 깃점으로 갑자기 주목받는 탐방 코스가 되었으니, 울주군청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역 홍보를 목적으로 기획한 <영남알프스 9봉 오르기>라는 이벤트 덕분이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울주군청이 제작한 완등 인증서와 기념품이 지급되었는데 입소문을 타며 1만여 명 이상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지역 경제에 20% 이상의 상승기여 효과를 불러왔다니 무엇보다 긍정적인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팬데믹에 갈 곳을 찾지 못하던 많은 시민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등산의 동기를 부여하였다.
2021년에는 5만여 명의 신청자가 있었고, 그중에 3만 명 이상이 완등을 기록했다. 2019년과 2020년에 지급했던 '촌티 나는' 기존의 기념품과 달리 '1온스 상당의 은화'를 지급한다는 공고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글자 그대로 난리법석이 났다.
애초에 울주군이 준비한 1만 개의 기념 은화는 2021년 상반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동이 났고, 기념품을 수령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산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울주군수의 대국민 사기극"을 비난했다. 또한, 울주군 홈페이지에는 기념품을 받지 못하게 된 완등자들의 불만성 지적이 폭주했다.
기념품 미지급 사태는 울주군의회의 추가 예산 편성으로 일단락 되는 듯했으나, 제작업체의 변경 고시 등으로 처음 공지한 것과 다른 타입으로 디자인이 변경되고, 지급일이 미루어지게 되어 여전히 불평불만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2022년 6월 전에는 지급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있었지만, 아직도 2021년의 기념품은 어떤 타입으로 변경되었는지, 또 정확히 언제 지급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다.
제 때 기념품을 수령하지 못한 참가자들의 학습효과로 인해서 2022년은 시작과 동시에'선착순' 도전을 야기시켰다. 채 1월이 가기도 전에 2000명 이상이 9봉 완등을 끝냈다.
"1일 3산 등정"까지 인정한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영남알프스는 북새통 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은 주변 지역을 방문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산준령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자는 취지가무색해졌다. 이제 영남알프스는 1온스의 은메달을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기념품 쟁탈 경기장'이 되어버렸다.
내 생에 이리 호젓한 간월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남알프스 9봉 죽이기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유치한 기념품 쟁탈전의 문제가 아니다. 단기간 많은 인원이 거의 같은 루트로 등산을 하다 보니 등산로 곳곳의 흙이 패어 나가고 뾰족한 돌부리들이 등산객들을 위협한다. 또한 등산로와 인접한 진달래와 철쭉의 가지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앙상한 모습을 드러 낸다. 수십만 평을자랑하던 억새밭은 스트레스를 받은 동전 탈모처럼 여기저기 방문객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150mm가 넘는 두꺼운 계단목들이 등산화에 으깨지고, 데크에 조성된 의자와 탁자들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지경이다. 아울러 흡연자들과 버너를 사용하는 방문객들로 인해 산군 전체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등산로 주변 틈새마다 쓰레기가 숨겨지고 있다.
들머리에 위치한 동네 주민들의 상수원이 등산객들의 세면장이 되었고, 주민들이 농사를 위해 드나드는 농로는 거대한 무단 주차장이 되었다. 등산객들에게 사과를 내어 주던 주민들이 주차료를 징수하는 불법주차장 영업자가 되었고, 때아닌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주민들이 등산로 입구에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기도 한다. 예전에 낯선 이의 행색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반가운 인사를 하던 주민들의 눈빛은, 이제 침입자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뀌고 있다.
일제의 삼림 수탈과 빨치산 토벌을 위한 폭격이 멈춘 이래로, 겨우 회복과 성장세를 맞이했던영남알프스산군들과 주변 인심들이 치명적인 파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모든 잘못은 울주군이 저질렀다.
맞다!
지나가며 불평 섞어 내뱉는 사람들의 판단이 맞다.
이유는 단 하나, 2021년도에 기념품 지급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이기 때문이다."울주군의 대국민 사기극"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이다. 이벤트 개최 전에 시민단체, 환경단체, 유관 산악회 등등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티가 너무 난다. 하긴 제대로 된 스폰서도 없이 기획된 군(郡) 단위 소규모 행정이 발휘할 능력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도 지역경제도 포기할 수는 없다.
늦지 않았다.
아직은 우리 모두가 계책을 모아 바로 잡을 시간이 있다.
몇 년 하다가 중단할 이벤트가 아니라면, 너무 늦기 전에 행정적 실수들을 바로 잡아가길 진심으로 조언한다.
상황이 안 좋은 것이지, 아직은 산이 안 좋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울주군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이 고래를 사냥했던 태고의 땅이고, 왜란의 와중에 단조 산성의 백성 전원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역사의 땅이다. 동래와 경주를 잇는 주요 요충지였고, 밀양과 양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더욱이 그 문화의 수준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태고인들은 바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의 그림을 남겨 두었으며, 울산 지역 최초의 석조 건물인 언양성당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제적인 수준의 <울주 세계 산악영화제>를 성공리에 치르고 있고, <울주 오디세이>라는 산상음악회를 통해 영남알프스 애호가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 주는 곳이 울주군이다.
허영만 화백이 극찬했던 언양불고기가 있고, 배성동 시인이 간판을 써 줄 만큼 진한 곰탕도 있다. '동부 분식'의 손맛 칼국수와 '평양냉면' 집의 슴슴한 냉면을 맛볼 수도 있는 곳이다.
울주군은 저력을 가진 도시이다.
주말이면 영남알프스를 떠도는 방랑자로서 영남알프스의 평안을 위해 일조할 방법을 생각해본다. 방문객들이 영남알프스를 좀 더 알게 된다면 1온스의 은덩이가 주는 감동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진 않을까......
그래서 산행 중에 여기저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에게 주워 들었던 얘기들을 영남알프스 9봉과 연계하여 묶어 보고자 한다. 언제, 어떤 얘기가 이 글의 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들이 <영남알프스 9봉 오르기>에 도전하는 참가자들의 자부심에 "영남 알프스 산꾼"이라는 명예로움을 추가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