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철종 12)에 간행된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에는 간월산이 ‘看月山(간월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등억리의 사찰은 ‘간월사(澗月寺, 혹은 관월사觀月寺)’로 표기되어 있다. 그 외에 肝月山으로 표기되기도 하는 등 간월산의 표기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간월산 정상석(2013년 설치)
이 모든 이름의 공통점은 달(月)이다.
약 1600년 전에 이 산기슭(등억리)에 "간월사"라는 사찰이 있어서 산 이름도 간월산이라 하였다는 것이 간월산을 자주 찾는 이들에게 다수설이다.
대략,이름들을 살펴보면 이런 느낌인데,어느 의미이든 간에달을 빼고 얘기할 수는 없다.
看月山(간월산) : 달을 보는 산 澗月山(간월산) : 산골물에 달빛이 비친다. 肝月山(간월산) : 月+干 = 달의 골짜기 觀月山(관월산) : 달구경하는 산
영남알프스 일대인 재약산,천황산,간월산,신불산,영축산을 이어서 걷는, 도상거리 33km의 등산로를 <하늘 억새길>이라고 부른다. 이마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 끝을 기분 좋게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가을바람이 불 무렵이면, 마루금(정상과 정상을 연결하는 능선길)이 온통 은빛 억새로 일렁이게 되니 예사로운 작명은 아닌 듯하다. 특히나 달빛이 반사되는 억새길은 걸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황홀경이다.
15만평의 간월재 억새밭, 10월 초의 억새는 아직 이르다.
행여 긴 걸음이 지겨울까 그 구간을 예쁜 이름을 붙여 다섯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그중에 제5구간이 배내재에서 시작하여 배내봉, 마당바위, 간월산, 간월재까지 이어지는 대략 4.8km 정도의 등산로이다. 간월산 달 신령님의 영감을 받았던 것인지 작명가께서는 이 구간에 <달오름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 붙였다.
천화(天火) 비리
간월산 도치메기(도끼등, 간월 공룡) 코스의 스릴을 즐기는 것도 추천할만 하지만, 배내봉에서 간월재로 이어지는 <달오름길>을 꼭 걸어보시기 바란다. 배내고개에서 간월산으로 가자면, 초입이 다소 밋밋하다.배내봉 산마루까지 온통 나무데크를 설치해놓았기 때문인데, 오르는 내내 뒤를 보아도 조망이 크게 잡히질 않고 나무데크는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있다. 그나마 중간쯤에 설치된 '오두산 오두메기' 갈림길 이정표가 최고의 볼거리이다.
배내재에서 능선까지 초반 오르막이 심심했던 것을 보상해주려는 듯, 배내봉에서 간월산까지 이어지는 길의 모양새는 동쪽은 오금이 저려오는 깎아지른 절벽이고, 서쪽은 한 눈 팔기 딱 좋은 완만한 능선길이다.만만한 서쪽에 잠시 한 눈을 팔다가는 동쪽 천 길 낭떠러지에 한 잎 낙화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년 봄 약초꾼들에게나 겨우 발견되어도 다행일 것이다.
조선 말엽 즈음에 먹고살기 힘들어 간월산으로 쫓겨 올라 가 화전민이 된 백성들은, 이듬해 봄에 더 많은 나물과 약초를 캐기 위해 간월산과 신불산 일대에 불을 질렀다. 언양에서 보면 삼일 밤낮을 타오르는 능선의 불길이 마치 막힌 하늘을 뚫기라도 할 듯하여 "하늘의 문을 여는 불, <천화穿火>"라고 부르고, 배내봉~마당바위~간월산~왕방재(지금 간월재)로 이어지는 벼랑(비리) 능선길을 <천화 비리>라 부른다.
등억리 임도나 사슴농장 임도 길이 무료했다면 천화 비리는 초보자들도 쉬이 접근 가능한 꼭 추천할 만한 길이다.
공룡의 땅, 간월산
간월재 휴게소 내려서기 전에 만난 나무화석, 규화목.
2012년 9월에 발견되었다고 하니, 우리 생애 극적으로 만나게 된 참으로 빠리빠리한 진빼이 화석이다.
직경 72cm, 32cm 두 그루가 확인되는데 2만 5천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의 나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즉슨, 지금으로 부터 2만 5천 년 전에는 이곳 간월산 일대에 공룡들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자라났던 나무가 자란 자리에서 화석으로 변한 특별한 현상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한다.
5만 평의 간월재 억새밭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고 가만히 사위(四位)를 돌아보시라. 당신의 가슴속에서 뛰쳐나온 공룡들이 억새밭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닐 것이다. 머리 위에는 익룡들이 거대한 날개 짓을 하며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해발 1,000m의 고원에서 만나는 공룡의 거친 그르렁을 듣고 싶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간월산으로 달려 갈 일이다.
천 개의 달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밤이면 석탑과 불상이 널린 경주 동남산 길을 걷는 것도 운치가 있으나, 오롯이 달을 안아보자면 바로 이곳 간월산의 천화비리 코스를 걸어보거나 간월재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받쳐 두고 달맞이를 해야 한다. 간월산의 달맞이는 영남알프스의 제1경에 두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영남 알프스 오디세이]의 저자 배성동 시인이 읊으시는 간월산 달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해지기 전에 [영남알프스 오디세이 / 삶창 출판]의 저자이신 배성동 작가과 함께 간월산 달빛기행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아름다웠던 밤 초단위, 분단위, 시시각각으로 다른 밝기와 다른 크기로 떠오르던 간월산의 달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까이 있는 신불산이나 영축산에서 봤던 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던 간월산의 달을 보니, 왜 조상님들께서 "간월산에는 천 개의 달이 뜬다"라고 하였는지 알만 했다.
산에만 달이 뜨는 것이 아니었다. 달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억새꽃에도 달이 빛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의 눈과 가슴속, 그리고 함께 한 이들이 나누는 커피잔과 술잔에도 저마다의 달이 하나 씩 떠 있었다.
산은 단 한 번도 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새의 일렁임처럼 마음에 들불이 확 당겨질 때는 두 번 생각 않고 대문을 나서야만 한다.가을 억새는 기다릴 여유가 없으되 잡목의 새 순이라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이 봄이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인 것같다.
주말에 특정하신 등산 코스가 없다면 등짐 울러메고 간월산 달오름길을 한 번 걸어보심은 어떠실런지.
신불산 오름길에 돌아 본 간월산 전경
남은 이야기들
"들어간 사람은 보아도 나오는 사람은 본 적 없다"는 저승골,
빨치산 대장 하준수와 친일파 이은상,
일제의 금강송 수탈, 빨치산과 토벌대 그리고억새밭,
죽림굴과 거북바위, 천질바위,
왕방재(간월재)의 늑대들,
오두메기와 선짐이질등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계에 매진해야 하니 시간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간절히 희망한다. 간월산이 품은 이 이야기들을 다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영남알프스를 찾는 이들이, 간월산을 오르는 이들이, 바위 하나 억새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으면 좋겠다. 1온스의 은화보다 훨씬 아름다운 '천 개의 달'을 저마다의 가슴에 소중히 품고 가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