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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Feb 18. 2022

영남알프스 노매드 (고헌산)

영남알프스의 서자

고헌산(獻山 해발 1,034m)


"영남알프스 9봉 오르기" 이벤트의 대표적인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는 산이 <고헌산>이다. 단거리를 선호하는 참가자들이 외항재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함으로써 인근 소호리 주민들이 본의 아닌 중앙선 침범 사고의 가해자가 되는 곤란을 겪고, 외항재 숲을 뭉개 주차공간을 확장하는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아둔한 행정의 전형적인 부작용이 벌어진 곳이다.

정상석이 북향이라 사시사철 그림자였는데, 올해 부터는 정상석 글자 방향이 다행히 남동향으로 바뀜(2020년촬영)

고헌산의 정상석은 특이하게도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2013년도에 지금의 정상석을 설치할 때 무엇인가 잘못된 좌향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가 중천인 시간인데도 정상석에는 늘 그늘이 생겨버렸다. 울주군청에 민원을 넣는 분들도 있었지만, 처음 헬기로 안착시킬 때 피치 못할 사정의 결과물 이리라 짐작해왔다.


 영남알프스의 다른 산들에게
등을 돌려 버린 정상석은
고헌산을 더욱 외톨이처럼 보이게 했다.


2022년, 드디어 민원이 해결되어서 정상석은 이제야 언양 도심과 다른 영남알프스들을 바라본다. "은화 뿌리기"가 본격 시작된 지금은 동남향 햇빛을 향해 새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는 카메라의 노출을 애써 조정하지 않아도 정상석 사진이 잘 나온다.

비로소 고헌산도 영남알프스를 바라 보며 그 무리가 되었다.


형제산

아주 오랜 옛날 고헌산과 가까이 있는 문복산의 드린(드림)바위에는 석이버섯(바위에 붙어 이슬만 먹고 자란다는 버섯)이 자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석이버섯을 채취해 임금님의 수라상 조공을 바쳐 오던 사람이 드린바위에 밧줄을 묶어 놓고, 밧줄에 몸을 의지하여 석이버섯을 따고 있었다. 얼마 뒤에 바위틈에서 나온 큰 지네 한 마리가 밧줄을 자르려고 밧줄을 갉기 시작하였지만, 버섯 취에 몰입한 약초꾼은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문복산 드린바위 전망대에서 고헌산(우측 함지박 형태)을 조망


그때 맞은편 고헌산에서는 부인이 남편에게 줄 참꺼리로 흰 죽을 쑤어 남편에게 가져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 있는 곳을 바라보는 순간, 큰 지네가 밧줄을 자르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르다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그 경황 중에 머리에 이고 가던 흰 죽을 모두 쏟아버렸다. 이 소리에 어디선가 한 마리의 큰 거미가 나타나 지네를 물리치고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그 고함으로 인해 일명 "고운산, 고함산, 고언산,  고험산"이라고 불리어지다가 '고헌산'이 되었다고 다.


고함 소리가 들릴 만큼 고헌산과 문복산은 가까우며 그래서, 두 산은 흔히 "형제산"이라고 불린다.


영남알프스의 서자

해발 1,000m 이상의 준봉들이 모여있는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가장 조용한 산을 꼽으라 하면 깊은 고민할 것도 없이 고헌산이었다.  그나마 낙동정맥이 지나는 곳이다 보니 근래 들어 스쳐 지나는 산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워낙 불편한 대중교통과 구경거리가 적은 산세로 인해 오랫동안 등산객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려지는 "영남알프스의 서자"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언양의 진산(陣山, 외적들이 침략해오면 대피하는 곳)인 만큼, 매우 중요한 산이었다.

고헌산에서 바라 본 문복산 (분화구 테두리 형태)

신생대 이후에 화산 폭발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마주한 문복산, 백운산, 삼강산 능선과 이어 보면 마치 한라산 백록담 테두리를 빙 둘러 는 듯한 모양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랫마을 덕현리에 있는 탄산유황 온천이 이 일대가 화산지역이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고헌산 서봉 쪽에서 진입하든 동봉 쪽에서 진입하든 간에,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고헌산의 "ㄱ자" 부메랑 능선은 대단히 평탄하게 펼쳐져 있다. 요즘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있는 외항재(=와항재)나 소호리에서 올라서는 단거리 코스는 너무나 밋밋한 육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제 아무리 변상증을 발휘해 보아도 멋진 이름을 붙여 줄 바위도 없고, 마루금(*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길)에는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조차도 없으니 주위를 돌아보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것 외에는 딱히 즐길 꺼리도 없다.

고헌산 유산양(젖을 위한 산양)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요즘은 정상 부근의 유기된 유산양(山羊)들이 등산객들의 눈요기가 되고 있는데, 사실은 인간보다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하고 있다. 그 녀석들은 진달래와 철쭉의 새순과 꽃망울을 뜯어먹고, 정상 주변을 온통 분변으로 더럽혀 놓았다. 여름에는 분변냄새와 파리떼에 숨을 쉴 수 조차 없을 지경이다.

어떤 이는 원래 산의 주인인 야생동물이라고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축과 야생동물은 엄연히 다르다.


녀석들 중 몇몇은 분명한 인식표를 달고 있으며 축사를 탈출한 가축이 번식한 것이다. 동물보호도 좋지만 산아래 주민들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생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을 결코 옹호해서는 안된다.

 

빨리 주인을 찾아 원상 복구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녀석들을 만나면 먹이를 주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당신이 주는 먹이가 분변이 되고, 식수원을 오염시켜 아랫마을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게 되는 독극물이 되는 것이다. 이 경고는 절대 비약이 아닌 현재의 사실이다.

고헌산이 얼핏 스릴 있는 재미나 구경거리는 없는 것이 단점이지만, 상북면 너른 들과 영남알프스의 주릉들을 돌아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오히려 걷고 있는 자신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다.

멍~때리기 딱 좋은 길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객들의 무료함이 만들어 놓은 서봉의 케언(돌무더기)봄의 진달래, 철쭉, 하얀 별처럼 빛나는 "애기나리"꽃이 시선을 잡아끄는 큰 구경거리이다. 보라색, 흰색, 노랑색이 어우러져 피어나는 제비꽃도 등산객의 발길을 잡기에는 충분하다.

긴 능선길이 4~ 5월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분홍주단을 깐다.


반전은 "무료함"

이 밋밋하다고 알려진 육산(흙산)은 사실 대통골, 곰지골, 큰골, 연구골, 홈도골 등등 무려 12개의 아름다운 계곡과 여러 곳의 폭포를 가진 산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각 코스로 접근하거나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고, 무더운 여름날 계곡 트레킹이 성행하는 대통골에서는 사망 사고가 생길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정작은 무료하지 않은 큰 산이련만, 영남알프스 9봉 오르기 탓에 최단 코스만 이용하다 보니 정작 그 속살을 보지 못하고 애먼 산 탓만 하는 것이다.

국제신문 근교산행 고헌산 지도

고헌산의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시라.

계곡물이 경계 짓고, 산봉우리가 경계 지은 다이아몬드 형태이다.

영남알프스 9봉 또 어디에  이만한 다이아몬드가 있을까.

다이아몬드 산이 무료하다니, 이거야말로 반전이 아닌가.

사실 심심한 산, 재미없는 산은 없다.

수 만년을 거기 있던 그냥 "산"이 있을 뿐이다.

가소로운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고, 조용히 다녀오면 만족할 일이다.

산에 적자가 어디 있고 서자가 어디 있겠는가.


남은 이야기들

용샘과 기우제

돌들겅(우레들, 우뢰들)아래 숨은 계곡

밀양강의 발원지 큰골샘

외항재와 와항재

백년 숲 소호마을



다음 이야기 : 문복산 드리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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