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시작되면 그 첫 순서는 언제나 그린 카펫 입장식이다.산악영화제이니 만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입장 순서가 있다.
올해를 빛낸 산악인이나 배우, 그도 저도 아니면 초청 게스트 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금뺏지의 등장에 금세 깨어진다. 시장, 군수, 시의회와 군의회 의원, 게다가 선거철이 임박하면 지역 국회의원과 각종 자자체의 주요 당직자까지 입장 순서의 상위를 차지한다.
사회자들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영화제 개최를 위한 예산 집행에 그들이 기울인 노고를 치하한 후에야 비로소 산악인들이 등장하고,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효과"는 온전히 선출직 공무원들의 몫이다. 그렇다고 이 행정가들이 오직 영화제만을 고려의 대상으로 화합할 만큼 살가운 사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산을 집행한 행정가들의 걸음은 위풍당당하다
산악영화제에서 모종의 가능성을 읽은 울산광역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영화제를 기획해 산악영화제를 흡수하려 했고, 울주군은 자신들이 키워 온 산악영화제를 지키려 애를 쓰고 있다. 산악영화제 개최가 느닷없이 억새의 가을에서 벚꽃의 봄으로 옮겨 탄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것이 현실이지만, 근거 없는 추측서 음모론은 이쯤 해야겠다.
이 글은 그들의 입장 순서나 알력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큼의 비중을 받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이들에 관해 얘기하려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울주
프레 행사와 1회 때는 지역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각종 수공예품과 농축산물, 지역 교육, 환경단체의 전시회와 상북면 부녀회가 주관하는 먹거리 상점 등등이 그 주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찌짐, 막걸리, 어묵과 국밥 등등 주민들이 준비한 '초라한' 산골 수준의 메뉴들은 영화제의 클래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고, 일부 '할배'들의 음주 추태는 실제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신불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모 지역 단체의 전시회는 시정과 위배되는 블랙리스트 단체가 되었고, 급기야 합당한 댓가를 지불받지못한 전시회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태되었다.
다행히 올 해에는 "숲퍼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상북면 주민들의 소규모 장터가 허락되었으니 그나마 "그들만의 리그"는 벗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7회 울주 세계 산악영화제 행사장 내, 지역민 부스
2015년 프레 행사부터 2022년 7회 영화제까지 보아 온 참관자들이 있다면, 당시와 비교해 영화제가 얼마나 정형화되었는지 알것이다. 행사 자체의 품위는 점점 올라갔지만, 지역민과 참가자, 그리고 산악인들과 영화인들이 어우러지던 "어울렁 더울렁"의 느낌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주모의 후덕한 온정이 느껴지던 주막이 소믈리에가 크리스탈 잔을 건네는 wine bar로 리모델링을 한것 같다.
그리고, 隱壁(숨은 벽)
현재 대한민국의 산악계는 크게 세 갈래 출신의 산악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한산악연맹(대산련), 한국산악회(한산), 코오롱등산학교(코등)가 그것이다. 비교적 늦은 1985년에서야 코오롱스포츠라는 기업체의 발기로 시작된 코오롱등산학교는 다소 그 앙금이 약한 모습이긴 하지만, 대산련과 한산, 코등 사이에 '은벽'이 존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대한 산악연맹과 한국산악회(한산)는 관계인이 아닌 자가 보기에도 느껴질 정도의 라이벌 체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숨은 벽을 사이에 둔 경쟁체제가 한국 산악계를 세계적인 산악 그룹으로 향상 시킨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2021년 기준으로 겨우 45명 정도인데, 그중 한국이 무려 7명이나된다. 이 또한 약간의 경쟁의식이 불러온 성과물이라는 측면도 있다.
울주 세계 산악영화제는 '대한 산악연맹'과 '한국산서회 (코오롱등산학교 관계자 많음)'라는 한국 산악계의 비중 있는 두 단체가 주축을 이루어 행사를 꾸미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산련 산하의 산악인들과 코오롱 등산학교 출신의 산악인들은 영화제 기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눈에 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 내지 않는 세계 수준의 원로 산악인들이부재하고 있다는 현실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초청게스트이든 관객이든 그들 모두가 함께 하는 산악인들의 축제가 되길 희망한다.
남은 과제들
지역주민 참여와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울주 세계산악영화제는 결코 성공한 영화제가 될 수 없다. 원주민들의 경제에 도움은 되지 않고 교통 혼잡, 집중되는 공해와 소음만이 주어진다면 원주민들에게 영화제는 불행의 기간이 될 수밖에 없다. 분노에 쌓인 그들이 봄철 객토를 핑계로 깻묵 거름이라도 집단으로 뿌려댄다면 영화제 준비위는 그들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또한 시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거나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한다고 해서 특정 단체들을 배제하여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그들도 지방세를 내는 주역이고, 방법은 다를지라도 지역이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지역민들이기 때문이다.
울산광역시 차원의 전국적인 대규모 홍보가 필요하다. 광역시 산하의 일개 군(郡)이 이루어 낸 '산악영화제'와 영남알프스 '9봉 인증 이벤트'의 단물만을 섭취할 것이 아니라, 영화제의 든든한 스폰서가 되어 주어야 한다. 가까이 부산이나 양산, 밀양, 경주 시민들도 잘 모르는 행사가 국제적이길 바란다면 이야말로 국제적인 웃음거리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울주와 울산은 하나이다.
반구대 암각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산악영화제는 모두 울산광역시의 세계적이고 독보적인 자산이다.
그리고 영화제 관계자들이나 주최 산악인들께서는 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해, 참여 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참여 인원의 카운팅은 단순히 온라인 매표의 확장성이나 설문 조사의 결과 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개막식과 폐막식 때 터지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와,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 선 줄이 더 진실한 카운팅일 것이다.
정치적인 당색을 버리고,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의 우월의식을 버려야 한다. 오직 자연과 사람, 그리고 그들을 얘기하는 영화만을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수 많은 짐들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에는 분명 임계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