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님께서 옥포에서 첫 승리를 하신 6월16일에 해묵은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보고...
*심신미약자와 임산부, 상상 조합력이 뛰어난 분들, 불면증이 있거나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은 읽지 말아 주세요.
적진 한가운데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일곱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하얼빈역에 도열해있었지만 누구도 안중근을 저지하지 못했다.안중근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가 쏜 7발의 총성은 세상을 향한 대한의 포효였고, 대한 남아의 흔들림 없는 기개였다. 그가 “코레아 후라(*세계공통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대한 만세)”를 외치고 기도를 위해 무릎을 꿇고 나서 6개월이 흘렀다.
영화 <2009로스트메모리> 중에서
새벽닭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1910년 3월 26일을 밝혔다.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난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오늘따라 죄수들에게 작업장으로의 이동지시가 없다. 식후 잠깐씩 주어지던 운동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모든 죄수들은 수형실로 다시 들여보내 졌다. 죄수들의 사소한 투정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각 사동의 철문이 굳게 닫혔다. 사실, 안중근의 사형집행이 알려지면 조선인 수형자들의 저항이 생길까 봐 구리하라 전옥이 감방을 개방하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린 참이다.
안중근은 재판 내내 자신이 대한제국의 비정규 의병인 군인 신분임을 주장하며, 군인 자격으로 국제법상 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당시 국제법인 헤이그 육전 조약(*1907)에 따르면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군(의병)이라도 군인으로 인정하여야 하고, 만약 적국에게 포로로 사로 잡혀 있을 시에는 인도적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즉, 포로수용소에 가둔 후, 전쟁이 끝난 후 포로에 관한 협약에 의해서 서로의 포로를 풀어주는 것이 국제법에 맞는 관례인 것이다.
러일 전쟁은 일본의 뤼순항 기습으로 시작되었다. 뤼순항을 차지하고 있던 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선전포고도 없는 일본의 기습으로 일만 명 이상이 처참하게 학살되다시피 한 곳이다. 그때 일본이 접수한 뤼순감옥서(監獄署)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있었다. 그 뒤로 여러 개의 사동이 증, 개축되어 많은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열악한 시설과 수감 상태에 따른 원성과 악명, 그래서 이 건물은 더 춥고, 더 어둡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 대(大) 자의 호기로운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그 호기로움과는 별개로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붉은 벽돌의 관동도독부 감옥서는 이곳이 생긴 이래 아마도 오늘이 가장 큰 대사를 치른 날일 것이다.
3번 방, 수인번호 26, 그리고 3월 26일
안중근의 사형 집행은 철저히 일본 외무성의 지시대로 집행된다. 일부러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26일을 기억하고자 안중근의 수인번호를 26으로 정했으며 26일을 사형 집행일로 정했다. 또한 집행 시간 역시 이토가 총에 맞았던 9시 30분에 맞춰 안중근을 수용실에서 불러 내었다. 그리고, 이토가 절명했던 시간인 10시에 맞추어 교수형을 집행한다. 단지 안중근을 대한제국의 독립군으로 인정할 수는 없기에 총살 대신 교수형을 택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오전 9시 30분>
간수 치바는 안중근의 수형실 앞에 선다.
작은 철창 너머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안중근이 보인다. 그가 간절히 남기고 싶어 했던 동양평화론일 것이다.
“안 선생님”
평소 같으면 수형실 밖에서는 수인번호 "26번”을 부르지만, 오늘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안중근도 여느 때와 다른 부름의 의미를 깨닫고 일순 붓을 멈춘다.
수형실 문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간수들이 포승을 채우고 용수를 씌운다.
<오전 10시 00분>
간수들이 안중근의 용수를 벗기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물었다. 안중근이 “동양평화 만세”를 삼창 하고 싶다고 하자 입회한 일본 관리들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들이 불허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안중근은 잠시 천정을 응시했다.
"당신들이 내 육신의 목숨을 뺏는 것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겠지만, 내 피를 머금은 대한독립의 정신은 백 년 천 년의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오. 나는 불의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니 당당히 천주님의 앞으로 나아가 무한의 즐거움을 누리겠소. 부디 동양을 향해 지금 일본이 행하고 있는 잘못을 깨닫고 하루빨리 동양평화의 새 출발을 하길 바라오."
간수들이 그의 팔을 잡기 위해 다가서자 그는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02분>
짧은 묵상을 마친 안중근은 자신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입회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었다. 어떤 자는 불쾌한 듯 안중근의 눈을 피했고, 어떤 자는 집행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무반응하였으며, 반대 세력을 처치하는 야수의 눈길을 보내는 자도 있다. 또 어떤 자는 눈을 살짝 찡그려 무언의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다 간수 치바와 눈이 마주쳤다. 안중근이 엷은 미소를 보내자 치바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솟구치는 송별의 슬픔을 삭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안중근의 포승을 풀어 주고 싶지만 그는 일본의 군인이다. 치바는 애써 안중근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단지 드러나도록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조용히 화답했다.러일 전쟁에 승리한 관동군의 일원으로 가장 강한 군인인 줄 알았는데, 정작 자신의 뜻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꼭두각시일 뿐이다.
<오전 10시 03분>
집행을 맡은 간수 중 한 명이 종이 두 장을 접어 눈을 가렸다. 안중근이 눈을 가리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차마 의연함이 가득한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은 오히려 입회한 일본인들이다.
결국 눈이 가려지고,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흰 천을 씌웠다. 어둠을 맞이 한 안중근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라고 나지막이 되뇌었다. 간수들이 안중근의 팔짱을 끼고 계단 7개를 오르며 교수대로 이끌었다.
사형 집행 5분 전 촬영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오전 10시 04분>
"앉으시오"
걸쇠가 채워진 마루 문 위에 목재 걸상이 놓여 있다. 안중근이 걸상에앉으니, 한 명이 안중근의 목에 밧줄을 감았다.
"안 선생님!금방 끝날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누군지 모를 간수가 안중근의 귀에 마치봄의전령처럼 속삭인다.
시계를 보던 구리하라 전옥이 미조부치 검사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집행관에게신호를 보낸다.
"관동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합니다."
입회자들에게안중근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쳤다. 비열한 자들이 내뿜는 공기 속에 안중근은 혼자가 되었다. 집행관이 교수대 한쪽을 밟았다.
꽈당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이 열리자 안중근의 하얀 도포가 날개처럼 펄럭거리며 아래로 뚝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고통스러운 날개짓이 일으키는 바람과 본능적인 단말마의 신음이 뒤섞이며 교수대의 커튼이 들썩인다. 육신을 빠져나가는 안중근의 영혼이 맹렬한 날개짓을 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 삐그덕 거리는 쇳소리와 펄럭이는 커튼이 집행실을 더욱 무거운 침묵 속에 빠트렸다.
뤼순 감옥 사형집행장. 밑의 통관으로 사형수의 시신이 떨어져 접히도록 설계 되었다.
<오전 10시 09분>
30년의 삶이 끝나는 데에는 채 3분이 걸리지 않는다.
고통을 맞이하는 인간의 본능은, 강인한 독립군 장군의 정신력과는 별개였다. 영혼과 육신이 강제로 분리되는 고통을못이겨 본능적으로 퍼덕퍼덕 움직이던 안중근의 모든 신경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일제히 늘어졌다.
올곧았던 안중근의 척수가 경추를 경계로 냉철했던 그의 뇌와 완벽히 분리되었다.
심연 같은 침묵이 흘렀다.
<오전 10시 15분>
입회자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축 늘어진 안중근의 시신은 6분이나 더 그렇게 군중의 침묵 속에 외로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찌그덕 거리는 나무판 소리와 끼긱 거리는 쇠사슬의 마찰 만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가는 길에 예포를 대신하고 있다.
고가 하츠 이리(古賀初一) 검시의와 통역 겸 검시기록을 맡은 소노키 스에키(園木末喜)가 커튼 뒤로 들어가 안중근이 절명하였음을 최종 확인하였다. 이제 안중근은 육신을 버리고 대한 독립과 동아시아 평화의 영원한 고혼이 되었다.
‘안응칠’. 태어날 때 몸에 일곱 개의 검은 점이 있어 아명이 그렇게 지어졌다. 어쩌면 일곱 발의 총탄으로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포효할 그의 운명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되고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던 침묵의 11분, 소노키 스에키(園木末喜) 기록관으로부터 안중근의 절명이 최종 확인되자, 그제야 앉아 있던 일본인 관리들이 속속 집행장을 떠난다. 아무도 뒤돌아 보지않고 서둘러 빠져 나가는 모습이 마치, 다급하게 살해 현장을 벗어나는 살인 공범들의 무리 같다.
불의한 살인자들의 피 냄새를 맡은 갈가마귀들인지, 의로운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한 길을 여는 삼족오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감옥서 교회당 위로 까마귀들이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