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시탐구

부산, 적도의 남자

부산 이기대~오륙도 편

by 바람개비

특별히 드라마를 챙겨보거나 하는 생활은 하지 않는 편이라서, 배우들 이름도 잘 모르고 누가 나온다고 해서 골라보는 성격도 아니다. 굳이 옛드를 찾아 다시 정주행 하며 챙긴 것은 아마도 <적도의 남자>라는 시크해 보이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던 것일 게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욕망, 배신, 복수, 사랑, 그리고 종국에 맞게 되는 파멸과 모든 것의 끝에 내려앉는 허무감. 짧은 드라마가 이것저것 많은 것을 담았다. 누나 덕에 연예계로 진출했다고 비아냥 받던 엄태웅은 이 드라마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엄정화 동생"이라는 타이틀을 겨우 떼낼 수 있었다. 한창 물이 올라 드라마든 예능이던 잘 나가던 배우였는데, 안타깝게도 성매매가 스캔들로 대두되어 결국 망나니 동생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연예계의 관심사는 이쯤 하고, 오늘은 <적도의 남자>와 영화 <해운대> 촬영지로 등장했던 곳을 돌아본다.

다들 아시다시피 바다를 접한 부산은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6.25나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바다를 통해 쏟아져 들어와 토착화된 해외 문물들이 있고, 수만 년 전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과 해운대 장산의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태종대와 오륙도, 이기대, 신선대, 백운대 등등 도심 속의 ‘또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는 부산 시내 지질공원들이 광범위하게 있다.
그중에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조성된 이기대 해안산책로는 예전에는 군사보안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곳이다.
해안을 따라 걷는 전체적인 거리는 편도 4km 정도이며, 출발은 오륙도 스카이워커 쪽과 용호부두에 인접한 동생말(=동쪽 선창 끝)에서 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중간중간 순환도로와 연결되는 탈출로가 있기는 하지만 이왕지사 걸을 요량이면, 끝에서 시작해서 끝을 보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동생말 전망대에서 시작해서 출렁다리를 지나고 2km 거리의 넓고 편안한 길을 걷다 보면 영화 "해운대"에도 나왔던 <어울마당>이라는 광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부터 오륙도로 걷는 길은 군부대의 순찰로를 이용하다 보니 교행이 불편할 정도로 좁고, 경사도 제법 있다.
용호동 동생말에서 출발한 많은 이들이 여기서 발걸음을 돌린다. 정히 몸이 불편하시다면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발걸음을 돌리시면 너무 아깝다. 좀 더 알짜배기 해안을 즐기시려면 약간의 불편과 땀은 투자할 생각을 하셔야 한다. 물론 오륙도 쪽에서 출발하면 내리막 비율이 많은 경사도라 난이도 면에서 유리하겠지만, 종점에 도착 후 오륙도 주차장 좌판에서 해녀들이 파는 멍게와 해삼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바다 맛을 제대로 보시자면 무조건 출발은 "동생말"쪽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바위를 자리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파도소리를 스테레오로 즐기시며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셔도 충분할 최고의 코스이다. 그래서 이 코스는 혼자라도 좋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도 좋다.
현해탄을 건너온 바닷바람이 차가울 땐 따뜻한 커피를 쥔 손이 고마울 것이고, 햇살이 뜨거우면 배낭에 챙겨 온 시원한 맥주의 목 넘김이 즐거울 것이다.
준비해 간 에그 샌드위치와 톳김밥에 바다향이 흠뻑 묻어나니 입이 즐겁고, 바위를 때리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눈이 기뻐할 것이다. 귓전을 춤추게 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은 덤이다.

세상 시끄러운 소리 다 막아주는 파도소리에 귀까지 즐거워지니 이야말로 오감만족의 휴양이 아니겠는가.
끊임없이 걸음을 멈추게 하는 절경과 비경들에 취해 비틀거리고, 종이컵 반 컵쯤의 땀을 흘린 후에는 환상의 섬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부산의 랜드 마크 오륙도이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내려서면, 바닷가 절벽을 이용해 조성한 스릴감 짜릿한 장소를 만나게 된다. 밑이 훤히 보이도록 바닥을 유리로 만든 오륙도 전망대 <스카이워커>의 짜릿함을 즐기시며 정성스레 '걸레질(덧신 착용 필수)'을 뽀드득뽀드득 해주신 후에, 바닷가로 내려서시면 이곳이 동해바다와 남해바다의 경계지점이라는 표시판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난류와 한류의 교차점이라서 인지 해초들의 식생도 섞일 테고, 그러다 보니 물 색깔이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일렬로 정렬해 두 바다를 가르는 섬 들을 보노라면, 인간의 짧은 생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륙도의 조형미에 저절로 경외심이 일어난다. 걷는 내내 자신들이 믿는 신(神)을 우러르고, 자신이 속한 지구별의 자연과 우주를 시나브로 찬양하게 된다.
십리 여정의 끝에 마주 한, 그 거대하고 수려한 장관 앞에 '이장일 검사'처럼 말없이 무릎 꿇게 되는 것은 출발 때부터 이미 확정적으로 예견되었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감동을 못 느끼는 자라고 할지라도, 오륙도 선착장의 해녀 할머니들께서 팔고 계시는 해산물 한 소쿠리 앞에서는 뉘라도 훅 넘어갈 것이다. 단돈 만 원이 가져다주는 부산 해안 트레킹의 황홀한 엔딩이다.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시면 동생말전망대 입구의 주차장을 검색하시고, 버스를 타시면 백운포고등학교에서 하차해서 10분 정도를 걸으시면 된다. 외지인들께서는 시티버스를 이용해 이기대공원이나 오륙도에 내리시면 될 것이다.

아직은 마스크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숨 막히는 세상이니, 잠시 호흡의 자유를 맛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응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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