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시탐구

순천 불일암의 빠삐용

살아서는 법정이 안고, 죽어서는 법정을 안은 나무

by 바람개비

지난 일요일, 새벽녘에 꿈인 듯 생시인 듯 "무소유"의 정신으로 유명하신 법정스님을 뵈었다. 나무향기도 느껴지고 숲 특유의 습기도 느껴지는 그런 꿈이었다. 열반에 이르신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깐깐하신 듯 보이시는 얼굴과 이제 막 삐죽삐죽 자라기 시작한 흰 머리칼이 너무도 생생하였다. 한 짐 지게로 장작을 나르시다가 "빠삐용 의자"에 걸터앉으시며 한 말씀 던지신다.

중을 믿지 마라
집을 버리고 떠나 온 놈의 말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다는 것이냐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얼마 전에 선암사를 다녀온 탓이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 필자는 불교신자도 아니거니와 그분이 생전에 살았을 때에는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거나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따뜻함과 엄격함. 문득 그분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충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송광사 입구 주차장에서 채 2분도 걷지 않아 극락교를 만납니다. 대부분 유명 사찰이 그러하듯 산사에 진입하려면 숲길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 아직은 녹색 창연한 9월의 나뭇잎이 하늘을 가득 가리고 도열해 있는 숲길을 지나며 일상의 잡다한 생각들을 필터처럼 걸러내고, 맑고 청아한 개울을 건너면서 사바세상의 온갖 고통과 번뇌와 오욕으로 점철된 육신을 씻어 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산사로 향하는 길은 나에게서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던지고, 꼭 필요한 나 자신만을 간직하고 찾아가는 "무소유"의 여정과 같다. 태풍을 잘 이겨 낸 푸른 숲길을 지나고, 송광사의 청량각(淸凉閣)에 도착하자 아래로 '졸졸졸'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개울이 흐른다. 여느 산사를 방문할 때와 마찬가지로 개울이 흐르는 이곳에 정자에 잠시 머물며 속세의 번뇌를 떨쳐내라는 뜻이리라.

곧은 심지로 일생을 정진하신 법정스님을 닮은 것인지, 곧게 뻗은 편백 나무 숲이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주고 좋은 향기도 품고 있다. 시원하게 쭉 뻗어 올라 간 편백나무와 소나무, 이제 색깔 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이는 단풍나무, 그리고 다람쥐와 멧돼지 같은 산짐승들의 먹이를 잔뜩 품은 도토리나무와 밤나무들 등등.

이 길은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 순천시에서 "무소유 길"이라는 이름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단장이라고 해야 오고 가는 산책 객들이 무료할까 봐 그저 스님의 책 속에 있는 글귀 몇 개를 골라 중간중간 글판을 세우고, 허물어진 길의 계단과 목책을 가지런히 해둔 정도이니 세금을 허투루 썼니 마니하는 종교전쟁은 삼가하시길, "툭하면 분노의 시대"에 고한다.
종교의 관점으로 가름할 수만은 없다. 법정이라는 큰 스승은 국가의 원로가 사라진 작금의 시대가 간직하며 그리워해야 할 큰 선배님이고 선생님이다. 집을 버린 중은 못 믿어도, 평생을 실천하신 무소유의 그 정신은 믿어도 되지 않겠는가.


"내가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내게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버리면 그 비어지는 공간에 행복이 들어찬다"하시던 무소유를 생각하며 불일암 향하는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른다. 아무리 천천히 걸으려고 해도 마치 평지를 걷는 냥 걸음에 힘이 차고 넘친다.

대나무터널의 장관에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터널은 끝이 나며 행자승이 밭 일을 하고 계신 불일암이 나타납니다.
필자에게는 어림잡아 720~730년 만에 첫 방문이다. 고려 말 자정 국사라는 분이 자정암이라고 세웠다는데, 폐사지로 남아있다가 불일암이라 이름을 갖는 것은 1975년 법정스님이 토굴 같은 암자를 깨끗이 단장하면서라고 한다.


밭을 지나고 계단을 오르다가 만난 법정스님의 "후박나무"이다. 생전에 법정스님이 심은 나무인데 45년을 자라 이제는 한 아름을 훌쩍 넘었다. 평소 스님은 이 나무 아래 의자에 걸터앉아 명상에 잠기시곤 했다고 한다.

이 후박나무를 도반(함께 수행하는 동지)이라 부르시며 외출 후에 돌아오면 "잘 있었냐"라며 안아주곤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가 법정스님을 안아주고 있다. 바로 이곳이 법정스님의 유골이 수목장으로 모셔진 곳이니 말이다.


반갑습니다. 스님! 첨 뵙겠습니다.


필자도 나무를 살며시 안아보았다. 놀랍게도 나무가 따뜻하다. 가을을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이 간간이 부는데도 의외로 따뜻하다. 믿거나 말거나 꿈속에서 느꼈던 딱 그 온화한 느낌의 따스함.....


고려 말 국사를 지내시며 송광사를 창건하셨다는 자정 국사의 부도탑, 그리고 법정스님을 안고 있는 후박나무가 함께 있는 불일암.
어느 유명한 풍수가는 소백산 부석사에서 시작된 기운이 조계산에 모여들어 송광사와 선운사라는 대사찰들로 발현되었다고 하였다. 그중에 혈이 모인 최고의 명당은 송광사 대웅전 자리라고 하였다만, 속인들의 눈으로 짚어 낸 명당 말고, 부처님들이 택한 명당은 두 큰 중이 흔적을 남겼던 바로 이곳 불일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렇게나 생긴 못난이 장작들을 예사롭지 않게 다듬은 솜씨가 눈 길을 끈다. 그냥 못을 뚝딱 박고 말아도 될 것을 깎고 파서 쩌귀를 딱 맞추어 놓으셨다. 불일암 처마 아래에 정좌하고 있는 이 의자는 법정스님께서 어느 해인가, 쌓여있는 장작들 중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몇 개를 골라 손수 만드신 일명 "빠삐용 의자"이다.

"의자 이름은 지어둔 게 있어. '빠삐용 의자'야.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거야."
ㅡ 소설 무소유 중에서 ㅡ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는 어떤 의자일까?

인생의 선배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가셨으니, 속절없이 "빠삐용의 의자"에 앉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 할터인데, 속세를 떠나지 못하는 우매한 범부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