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00명의 훈남들이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뛰어다니던 영화가 있었다. 300명의 스파르타군이 22만 페르시아 군에 맞서 전멸의 각오로 싸웠던 B.C.480년 '테르모필레 전투' 실화를 모티브로 한 <300>이라는 영화이다. 300명의 훈남들이 가죽 팬티를 입고 뛰어다녔지만, 무엇보다 제라드 버틀러의 눈부신 근육과 절체절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스파르타 군인들의 기개가 훨씬 더 돋보이는 영화였다.
놀랍게도 이천 년 뒤 한반도에서 "300"과 흡사한 전투가 산제 벌어진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밀양으로 향하던 왜군들은 삼랑진 입구의 '작원관'이라는 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삼랑진 성민 300명을 모아 이곳 작원관 문을 막아섰던 것이다.
조선 군사는 고작 300명, 적병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제1군 1만 8700명이었습니다.
무려 62:1이라는 숫적 열세를 가지고도 24시간 이상을 버텨 낸 위대한 전투였다. 물론, 숫적 열세와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끝내 뚫기는 하였지만, 동래성을 호기롭게 함락했던 왜군 1진이 예상외의 고전을 하였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이다.
그러한 승리가 가능했던 것은 조선 300 용사들의 용맹은 물론이거니와, 옛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주행로가 오솔길처럼 워낙 좁은 길인 데다가 한쪽은 강물이고 또 다른 쪽은 급경사의 산이 버티고 있어서 다수가 한꺼번에 달려들 수가 없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鵲院(작원)"이라는 이름이 '까치 작(鵲)'자를 써서, "까치나 겨우 다닐 만한 국립 숙소(검문소)"라는 의미라고 하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그 가파름이 짐작된다. 경남 양산 물금읍 황산공원에서 삼랑진 검세리에 이르는 이 구간을 '작원 잔도(벼랑에 난간 등으로 설치된 길)'라고도 불렀는데, 지금은 이 길에 인공 난간 길을 만들어 자전거와 도보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잔교를 확장 설치하였고, '황산 베랑길(벼랑길의 경상도 사투리)'이라는 정감 있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잘 살펴보면 석축으로 보강한 오래된 잔교의 흔적이 여전히 여기저기 남아 있다. 심지어 이곳을 지나던 고을 원님이 미끄러져 낙동강 물에 빠져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이 길의 위험성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도 없다. 사람이 걸을 수 없는 바위는 석축을 쌓아 보강했다고는 하나, 실족을 막을 만큼 큰 도움이 아니었나 보다.
왜놈들은 못난 제 조상놈들의 고전을 잊지 않았던 것인지, 대한제국을 병탄 하여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작원잔도 구간을 철길로 확장함으로써 작원관을 가장 먼저 망쳐버린다. 지금도 밀양을 지나 부산으로 오고 가는 기차는 여전히 이곳을 지나고 있으며, 낙동강 자전거 종주를 하여 부산 을숙도 인증센터를 가려고 해도 이곳을 지나는 길이 가장 빠르다.
근래 이르러 작원관의 관문은 원래의 위치보다 좀 더 넓은 삼랑진 쪽으로 이동, 복원되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너른 무료주차장과 화장실, 게다가 가까운 강변으로 인해 주말이면 캠핑카 동호회의 집합장소가 되기 일쑤이다.
물금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베랑길'은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런 흔한 자전거 길이 아니다. 왜적을 막기 위해 순절한 조선판 <300>의 주인공들이 싸우던 곳이고, 간교한 일제가 없애려 했지만, 관민이 한뜻으로 석축을 쌓고 길을 내었던 흔적을 지켜낸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역사의 길이다.
길을 걸으시든 자전거로 내달리시든, 고개를 살짝만 돌리시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잔도의 흔적들을 쉬이 찾으실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베랑길을 달리다 보면 가끔 조선 300의 용사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지키던 강안은 눈앞에 들이닥친 적군이 조총과 칼을 들이대며 밀려드는지라, 지금의 강안 가교가 주는 아찔한 경치보다는 훨씬 더 두려웠을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우고도 억울한 모함을 당해 고초를 겪어야 했던 '박진' 장군과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 백의 용사들이 있었다. 오늘 그 무명의 용사들처럼 이름조차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아이들이 국방의 의무라는 미명 하에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지키는 아이들도, 지킴을 받고 있는 우리들도 마스크를 벗어던질 진짜 봄을 맞으려면 모두 건강해야겠다.
외람되지만, 행여 북풍한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거든 우리 아들들이 뿜어 내는 한숨일지도 모르니 물리치지 마시고, 남쪽 햇살이 비치거든 스러져 간 조선 300 용사들의 충정인가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박진" 장군을 동래성 전투의 도망자라 칭하는 블로거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도망자들의 모함을 받은 장계였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졌고, 권율 도원수의 인정을 받아 선조로부터 승급된 벼슬을 받은 용장입니다. 부디 사료 검토에는 신중, 또 신중하시어 이 땅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욕되게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