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출산이 가져온 산후 우울증에 IMF라는 국가적 재앙이 불러온 남편의 실직, 그리고 양가 어른들의 경제적 몰락까지 겹친 터라 아내에겐 심각한 우울증이 생겼었다. 하루벌이를 위해 대문을 열고 나설 때도 행여 아내가 극한 선택을 할까 아내와 눈을 맞추려 돌아봐야 했고, 귀갓길에 15층 임대아파트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119 앰뷸런스라도 서 있는 날엔, 철렁 내려앉았던 가슴을 쓸어 담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칠흑같이 깜깜한 절망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자정을 넘긴 어느 밤, 문득 세상 끝까지 달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토말"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뒤척뒤척 잠을 못 이루고 있는 아내에게 통장의 잔고를 물었다. "삼백 몇십만 원쯤......"
잘 풀리면 한 달치 월급이고, 가지고 있어봐야 한 두 달 연명할 곡식에 소용될 뿐이었으니 설령 그것을 날린다 해도 크게 원통할 것이 없는 금액이었다.
아내에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고 지금 바로 전국일주를 떠나자고 했다. 대충 옷가지랑 이불 보따리를 챙겨 잠든 아이를 담요에 돌돌 말다시피 하고, 마치 야반도주를 하듯이 차를 몰고 훌쩍 떠났다.
7번 국도 동해바다 화진 휴게소에서 맞이했던 시뻘건 일출... 여차저차 차 안에 이불 깔고, 빨랫줄 걸고, 코펠에 밥을 해 먹어 가며 20여 일 간을 영락없는 거지꼴로 전국을 돌았다.
속초 찍고 춘천 찍고, 강화도, 전주, 목포... 그렇게 돌고 돌아 도착했던 진짜 이 세상의 끝 동네. 토말!
밤 8시쯤 도착한 땅끝 '토말'에는 추적추적 구슬프게 여름 비가 내리고 있었고, 어두운 손전등에 의지해 여기저기 미끄러운 길을 더듬으며 세상의 끝을 구경해야 했다.
훗날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내는 이번 여행이 가족동반자살을 위한 마지막 여행인 줄 알았다고 했다.
"어차피 며칠 있으면 바닥 날 돈인데, 마지막 잔고를 다 쓰고 온 가족이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통장잔고를 깡그리 비우고 완전한 제로에서 새로이 시작하겠다는 나름, 배수의 진을 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책임한 가장이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마지막 잔고에 기대어 숨죽이며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내게 그 여행은 인생을 포맷하는 새로운 결정이었다.내 그런 치기 어린 결단이, 무능한 가장을 둔 아내에겐 극단으로 보였나보다.
그런 기억 때문에 해남의 땅끝마을은 지난 20년 남짓, 나의 기억 속에는 어둡고 후덥지근, 추적추적 했던 세상의 끝으로 남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웃기는 건, 그 당시 결심만 거창했고, 토말을 다녀왔다고 해서 내 삶 또한 별달리 바뀐 것도 없었다. 개인의 운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운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시대상을 어찌 거를 수 있었겠는지요.
다만, '세상의 끝을 이렇게 보았으니 이제 더 끝은 없을 것이고, 통장의 바닥을 확인했으니 더 바닥은 없을 것이다'는 촛불보다 가녀린 희망 하나는 갖게 되었다.
년 전에 나랑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려 상처 가득 입은 친구가 있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친구는 땅끝마을을 보고 싶다고 했다. 찰나의 생각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지금 가자"라고 했다. 있던 차를 팔아버렸으니 내 차가 필요해 눈치를 살피던 친구 녀석은, 생각 없이 지나는 얘기로 꺼낸 말이라며 이내 손사래를 쳤지만, 세상의 끝을 보면 친구 녀석도 내가 보았던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친구도 어렵사리 꺼낸 부탁이었지만, 솔직히 그 어두운 기억 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보기로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도 참으로 힘든 선택이었다. 하지만 상처 입었다고 언제까지나 피하는 것은 흉터만 남기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안해하는 친구에게 해남의 달마산도 보고 싶다고 애써 웃음 지으며 길을 나섰다. 희뿌연 미세 먼지로 인해 남도 쪽빛 바다에 가득한 섬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내 상처로 인해 힘들게 남아 있던 세상 끝의 풍경에 대해서 기억의 판갈이는 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친구일 뿐, 친구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오롯이 알지 못하니, 내 동행이 친구의 상처에는 얼마나 약이 됐을지는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구의 한 마디로부터 시작한 급조된 여행이 내가 오랜 세월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상처를 다시금 마주하게 해 주었고, 아픈 기억을 희망의 깨달음으로 판갈이 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토말 오르는 길, 친구와 걸음을 걸으며 친구의 웃음을 보았고, 친구의 결의를 들었다. 그곳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나의 오늘을 있게 한 "희망의 시작점"이란 것을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