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방방곡곡 아픔이 없는 도시가 있으랴만, 아픔의 도시를 꼽으라 하면, 단연코 남도의 중심 광주다. 하지만 오늘은 애써 아픔과 슬픔은 접어 보련다. 그 지난한 역사 앞에 너무 미안하고, 너무 죄스럽고, 살아남은 자들의 꼬물거림은 너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소돔의 말라 붙은 소금바위처럼, 어머니들의 눈물이 말라 수정병풍을 세운 도시, 아무런 권력이나 재력이 없는 나는 그 도시를 위해 '기도' 말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오늘은 내 가슴 소중한 한 켠에 그 피눈물은 애써 넣어 두련다.
그냥 빛고을 광주의 "빛" 만을 담아 보자.
갓 스물을 넘기고 군입대를 한 달 앞둔 즈음에 전국일주를 나섰던 적이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신문이나 잡지에서 흥미가 생겨 스크랩해 두었던 곳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입영열차를 탈 생각이었다.
부산진역에서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시작한 출발이 어찌 코스를 잡았던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예산, 논산, 장성을 거쳐 광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랜 노숙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버스에서 반쯤은 기절한 듯 넋을 놓고 있던 그때 환한 빛으로 감싸진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구)전남도청-전일빌딩에서 조망
빛고을! 광주(光州).
해 질 녘 낮게 깔린 해는 무등산을 비추고, 무등산의 넉넉한 품에 반사된 빛은 다시 도시를 비추고, 그래서 해 질 녘 광주는 산과 도시가 어우러진 하나의 큰 "빛덩어리", 그 자체였다. 삼십 년을 지나도 그 빛 내림 가득하던 도시와 우뚝 서서 그 빛을 오롯이 받아 내던 무등산을 잊을 수가 없다. 불타는 애국심으로 광주에 뼈를 묻은 이들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지금도 "광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 황금빛의 빛천지가 생각나고, 눈을 감으면 눈꺼풀에 반사되던 그 환한 빛의 따사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본 첫 광주는 빛천지였다.
무등산은 오래전 백악기의 화산 활동으로 생긴 산이다 보니 온갖 모양의 화강암 암석이 있는데, '서석대'와 '입석대'로 대표되는 "주상절리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철원 한탄강, 경주 양남, 울산 정자항, 제주도 등등 물가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무등의 주상절리는 산 정상부에 있는 것부터가 특별하다.
특히 이채로운 점이라면, 마루금에 있는 서석대는 석영 함유량이 매우 높아서 노을이 질 때 바라보면 반짝반짝거리는데, 이 모습 때문에 예전부터 ‘수정병풍’이라고 불렀다. 이 '수정병풍'이라는 용어를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기한 것이 ‘상서로운 바위기둥(서석대, 瑞石臺)’이라고 보면 된다. 어쩌면 그날 흐리멍덩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무등산의 빛은 노을을 머금은 서석대의 반짝 거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립광주박물관 전경
국보 제103호 광양중흥사지 쌍사자 석등
국립 광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국보가 빛을 밝히던 석등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그 굳은 화강암을 다듬어 쌍사자를 만들고, 화강암 결 따라 새겨져 있는 광채의 세포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빛고을"에 가장 어울리는 전시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구 도시에 빛을 불어넣기 위한 펭귄마을의 노력, 암울했던 시대에 사람들을 빛으로 이끌었던 선교사들의 고난이 묻어 있는 역사문화마을도 한 줄기 빛이었다. 또한 황금빛 튀김옷을 입고 있던 양동 통닭과 수일 통닭, 자식들을 향한 엄마의 환한 미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상추튀김,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처럼 이어지고 있는 1913 송정역시장, 이 모든 것들이 광주를 밝히는 빛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빛고을이 있는 것일 테고.
아! 광주여~ 오! 무등이여
짧은 일정에 쫓겨 많은 것을 담지는 못하였지만, 빛고을 광주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빛임을 재차 각인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당신의 시간마저 좀먹는 것을 방치하지 마시고, 지금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