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길은 지나온 역경을 알기에 두렵다. 그래도 대문을 나서면 어디든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장마와 함께 예정된 업무들이 취소되고,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하릴없이 보내기엔 아쉽다.
뭔가 신박한 요령을 궁리해 본다.
계속 비가 온다면 하루짜리로 옴팡지게 입산수도의 즐거움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차를 타고 최대한 산중으로 들어가고, 요행히도 비가 안 내려 준다면 능선을 걸을 기회가 올 것이리라.
그래 일단 달려 보자
내비게이션에 <관음 휴게소>를 치거나 <선본사 주차장>을 치고 내달리면 '갓바위 선본사 지구' 공영 주차장에 도착한다.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중증장애인이 탑승했다면 선본사 입구까지 조금 더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사지가 멀쩡한 일반인의 마차는 여기까지만 허락된다.
능성재를 통해 환종주를 계획하는 이들은 부러 차량 회수가 편한 이곳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초파일이 아니면 가득 찰 날이 없을 만큼 꽤나 넓은 주차장이다. 세금이 국민들의 여가를 위해 잘 쓰이고 있는 바람직한 광경이다.
선본사 산문 입구까지는 보통의 여유 있는 걸음으로 10~15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한 여름 대구의 내리쬐는 땡볕을 만난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궁즉통'이라 하였던가.
휴게소의 커피를 사서 마시거나 상가에서 초,쌀,향등의 공양물을 사면 상가 입구에 있는 승합차가 2분 만에 선본사 산문에 데려다준다.
계속되는 오르막이지만,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수능 철이나 불가의 기념일이 아니면 사람들과 크게 부대낌도 없으니 이냥 저냥 종아리 근육을 풀어 줄 생각으로 10여 분을 걷는 것도 굳이 마다할 일은 아니다. 사실 요즘 같이 위험한 전염병이 횡횡하는 시국에 낯선 이들과 좁은 승합차에 앉는다는 것이 더 불안하다.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15분을 올라오면 선본사 입구에 도착한다.
선본사 입구 / 3년 묵은 폰카로 직찍
일주문 지나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어묵집'이 다소 눈에 거슬린다. 상가도 아닌 사찰 대문 안쪽에 하필이면 어묵집이라니.어묵이 무엇인가. 물고기를 죽이다 못해 살과 뼈를 갈아 묵사발을 내고 뜨거운 기름 튀기기까지 해서 만든 음식이지 않은가. 게다가 물고기는 목어로 만들어져 중생의 어리석음을 계도하는 목탁으로 거듭났는데 말이다. 하기사, 밤낮으로 나무 물고기를 두들겨 패며 염불을 하는 것이 수행자의 중요한 일상이니, 묵사발 난 물고기가 무에 그리 대수일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신심이 깊다면 안 사 먹으면 그만 일터이지만, 워낙 맛이 있다고 SNS에 소문이 자자하니 솔직히 그 맛이 궁금은 하다.
산사의 어묵... 죽은 고기를 꺼려하면 산 고기들을 계도하지 못한다는 소승불교 식의 가르침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자. 하긴, 산행 중이나 하산 직후에 맛이 없었던 음식이 있었나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지금 내가 지니지 않은 것은 오직 계산할 돈뿐이다.
많은 돈을 들여 세워 놓은 석등은 밤이 되면 파란색 Led가 켜져 중생의 나아갈 길을 잡아 준다. 요즘은 어딜 가도 지나치게 돈을 '처발처발'한 듯 화려한 사찰 인테리어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중생들의 밤길을 밝히는 불빛 공덕을 어찌 탓하리오.
사찰이라고 해서 꼭 천정에 거미가 살아야 하고, 바닥에 지네가 기어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
큰스님의 엄숙한 불공 중에 기어오르는 지네를 발견한 보살님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야 다분히 자본의 힘이 발현된 사찰이 나을 수도 있으리라.
다만, 세금으로 지원되는 문화재 관리비나 중생들이 공양하는 불전함이 파계승들의 도박자금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불자가 아닌 납세자로서 갖는 엄정한 바람이다.
갓바위가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팔공산 북쪽 군위에서 제2 석굴암이 발견되고, 팔공산 일대에서 불교유적 찾기가 유행처럼 시작되었다. 그 와중인 1962년에 갓바위가 발견되고, 산 아래 '선본사'의 신도들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부처님"이란 소문을 내면서 기도터로서의 광풍이 시작되었다.
교세가 확장되자 고문헌을 근거로 한, 뒤늦은 대구 쪽 '관암사'의 갓바위 관리권 소송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불과 60년 동안 전국 불자들에게 소원성취의 엄청난 명성이 쌓였다. 특히 관봉여래상이 머리에 쓴 학사모 탓에 수능 철이 다가오면 엎드려 절을 올릴 틈조차 없다.
계단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갓바위 하단으로 불리는 칠성각과 요사채가 나타난다. 시원한 자판기 음료수도 있고, 샘물도 있으며 불가의 제례가 있는 날에는 선본사가 제공하는 공양간으로 빛을 발한다(전문식당이 아니다 보니 경험 상, 맛은 그다지 추천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중단에 속하는 대웅전에는 큰 삼층석탑이 버티고 서있으며 '약사암'으로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일반인에게는 그 출입을 통제하지만 약사암까지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뚫려 있으니 갓바위 최단거리는 실제로는 약사암 주차장이라고 해야겠다.
석탑 앞 자궁을 상징하는 '애자모지장굴'은 태중에 다양한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영혼들을 위한 기도처라 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입구에 놓인 불전함이 내부의 동자상들을 막고 있어 유난히 거슬린다.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불전함이었다면 '은빛 스뎅'이 불러온 이질감은 좀 덜했을 것 같다.
관봉
갓바위는 의상대사의 제자였던 의현 대사께서 학이 물어다 주는 곡식으로 연명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리며...
쓰고 있는 갓은 후대인 고려시대에 올린 것이라지만, 한 덩어리의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머리부터 좌대까지 흐트러짐 없이 공력을 발휘하였으니 실로 그 정성이 지극하다.
바람이 매섭다. 이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관봉 골짝의 쉬지 않는 바람을 잘 알고 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날씨가 맑으나 비가 오나, 밤이나 낮이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서운 산바람은 고도 870m에 눌러앉아 있는 죽은 부처를 사시사철 희롱한다.
아니, 그냥 돌덩이가 아니다. 내리 1300년을 중생들의 염원을 듣고 이루어주며 함께 살아온, 진정 산 부처이다.
산에 있으니 山부처요, 중생들이 대를 이어가며 고개 숙이니 죽지 않는 산(生) 부처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수천수만 중생들의 염원과 기도가 돌풍이 되어 '관봉' 골짝을 들이친다. 필경 돌부처님도 속시끄럽기는 속인과 다를 바 없이 매 한 가지일 터이니 아무나 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는 곳은 아닐 게다.
오래전, 와촌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갓바위 부처에 불을 놓았다. 부처가 불에 그슬려 숯검댕이 묻으면 팔공산에 있던 수호용이 부처를 씻기기 위해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네에 살다 보니 미처 그 영험한 이적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용의 노력이어서인지 빗줄기 속의 부처님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인다. 1300년의 세월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35분, 나무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너른 길이라서 우산을 받쳐 들고 천천히 잘도 올라왔다.
비가 점점 거세어지니 동화사나 노적봉 방향으로 길을 늘려 진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될 듯하다. 비를 맞아 체온도 조금 식은 듯하고, 특히 혼자 빗길 산행에서 낙상이라도 할라치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분명 119에 민폐다.
갓바위, 사실은 엄청난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내친김에 무명의 풍수가의 말을 빌어 갓바위 소원성취의 비밀을 하나 더 누설해야겠다.(물론 이것도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갓바위는 팔공산 '양'의 기운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음'이 부족하니, 팔공산 음의 기운이 모여든 와촌면의 <불굴사>까지 세트로 들러 '석조여래 입상'에 불공을 드려야 음양이 조화되는 더 영험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뒤편 '홍주암'의 석굴에는 석간수까지 있으니 이보다 음이 충만할 수 있겠는가.
관봉의 갓바위만 보고 불굴사를 보지 않는다면 앙꼬 없는 찐빵을 맛본 것이리라.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머리에 학사모를 쓴 갓바위 부처님은, 전국 최고 진학률의 그 어느 학원과 비교해 누적 기준으로 볼 때, 독보적으로 더 많은 시험 합격자를 배출한 일타 강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