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시탐구

순천 선암사

청백(淸白)의 값은 엽전 세 닢

by 바람개비

당연한 것들을 당연스레 하지 못하는 불운의 시절이다 보니 괜스레 우울증이 쌓인다. 가뜩이나 특별난 재미라곤 없던 삶에, 코로나가 엎치고 장마까지 덮치니 제대로 힐링할 곳을 찾아 나서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눈물이 쌓일 때 남자라는 이유로 그 눈물들 삼키지 말고,
그 눈물 속 염분에 문드러진 염장이 젓갈 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 한 방울까지 속눈썹이 듬성듬성해진
아랫 눈두덩이 밑으로 쏙 빠지게 하는 어떤 곳...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그런 곳에 가서 허공에 욕지거리도 질펀하게 쏟아내 보고, 실성한 이 마냥 실컷 눈물을 흘리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름을 "뒷깐"이라고 해놓은 선암사의 개방형 화장실이 생각난다. 시인 '정호승'님이 선암사라는 시에서 읊었던 선암사 뒤깐. 조금 멀긴 하지만, 순천 시민이 아니면 입장료도 내야 하지만, 그래도 선암사 해우소 그곳에 가서 마음에 뿌리내린 근심, 걱정, 눈물들을 모두 쏟아 내고 홀가분하게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생각을 끊는 것은
현관문을 여는 손이요,
계단을 내려서는 발이다.


내친김에 달려 본다.
순천 조계산의 "선암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한국의 7대 사찰 중에 한 곳이며, 소유권은 조계종이 가졌고, 현재 점유는 태고종이 하고 있는 특이한 사찰이다.
600년 된 홍매와 400년 된 고매가 천연기념물이고, 봄이면 300년 된 자산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찰이다. 오랜 세월을 이어 오며 지형을 고려한 증축을 하다 보니 여느 사찰들과 달리 권위가 느껴지는 장소가 아니라, 마치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것처럼 여기저기 'ㅁ'자 구조의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후사가 없던 정조를 위해 100일 기도를 한 후, 순조가 잉태되어 한 마디로 100일 기도계에 대박을 터뜨린 기복 사찰이다. 그래서 원통전(관음전) 에는 순조가 12살 때 일필휘지로 남겼다는 '대복전'현판도 남아 있다. 백제 때부터 전해져 오는 사찰이다 보니 그러 저런 속물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도 있다.

그 많은 구경거리들 중,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무엇보다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절 진입로에 있는 "승선교"이다.

<昇仙>.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이름이 붙을 만큼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이다. 물론 2005년도에 보수공사를 하여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원형은 아니지만,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다가 만나는 "승선교"와 그곳을 통해 바라보는 "봉선루"는 신선이 바둑을 둔 바위라는 "선암"이라는 멋들어진 지명이 이 계곡에 생긴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조선시대 석축 기술로 어찌 이런 아름다운 아치를 그려냈을까 경외심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그 아름다움의 와중에 아치의 아래, 한가운데를 잘 살펴보면 '갑툭튀'인 용머리가 있다. 저 용머리가 아치의 무게 중심이고, 용머리를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전설이 있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누가 감히 그 전설을 검증해 볼 용기가 있으려나...

무엇보다 저 용머리를 꼭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용이 물고 있는 엽전 세 닢 때문이다.

선암사 주지였던 호암 약휴 대사(1664∼1738)가 정유재란으로 쑥대밭이 된 선암사를 재건했는데 1713년 다리를 완공한 뒤에 걸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선교를 복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시주를 받았고, 다리가 다 세워졌을 때 남은 것이 달랑 엽전 세 닢이었다. 비록 푼돈이나마 처음에 모금했던 용도와 달리 쓰면 '공금유용'이라 생각했고, 다음에 다리를 보수할 일이 있으면 그때 사용하라고 승선교의 용에게 물려 놓았다고 다.


몇 가지 점에서 다소 놀랍기도 한 전설이다. 도대체 얼마나 꼼꼼하게 예산을 짰으면, 공사가 끝났을 때 단 세 푼 만 남았을까. 그리고 겨우 세 푼조차 헛된 곳에 사용하지 않고 승선교에 남겼으니 그것이야말로 수행을 하는 사람의 청빈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불가(佛家)에서 다리의 공덕은 부처님을 찾아오는 이들과 수행자의 발을 젖지 않게 해 주며, 불어 나는 계곡물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타인을 위한 배려의 공덕이다.

그런 점에서 승선교는
기부자들이 보여 준 상호 배려의 정신이고,
수행자가 보답한 공명정대함의 상징이다.


엽전은 철사에 꿰여 용머리상 이빨에 걸려 있지만, 단번에 알아보기엔 너무 작긴 하다. 누 백 년의 세월에 엽전은 부식되었으나, 호암 대사의 뜻은 여전히 삭지 않고 아름다운 계곡을 흐르는 물비늘에 비치어 더욱 빛나고 있다.
행여 선암사에 가실 량이거든, 무신경한 사람이 용머리상을 언뜻 보고, '저게 뭐지? 박쥐인가'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심드렁하니 묵묵부답 마시고 엽전의 유래를 들려주신다면, 사지멀쩡한 대부분은 잠시 다리 아래의 비탈길을 내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소나무 발판의 찌그덕 소리가 다소 불안하긴 하지만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양쪽 눈 속에 가득한 소금물 좀 실컷 버리고 오랬더니 용이 물고 있는 겨우 엽전 세 푼에 발이 멈추었다. 구질구질 장맛비가 그치질 않고, 구비(口鼻)를 틀어막은 마스크에 땀범벅이 되지만, 한 편으로는 흐르는 개천에 잠시 발을 담가도 얼어 죽지는 않아도 될 여름이기도 하다.

낯설지만 '정호승'의 시 한 편 읽어 보자. 그래서 내쳐 선암사로 달려가고 마음속에 눈물일랑 애당초 쟁여 두지 말자.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작과 비평사], 1999년 초판.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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