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학동창의 딸이 결혼식을 했습니다. 축의금을 받기로 했던 사람이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저에게 축의금을 받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조카들의 결혼식 등 집안에 여러 가지 경조사가 있었고, 어른들이 떠나실 때는 상주의 자격으로 부의금과 조화를 받는 당번을 한 적이 있었지만, 축의금을 직접 받아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경사스러운 자리인 친구네 혼사에서 자칫 뉴스에 나올 법한 실수가 있을까 싶어서 "결혼식 축의금 받는 방법"을 검색해서 독학하고, 예식장에 미리 도착해 다른 혼주들이 어떻게 받고 있는지 그들의 방법도 나름 참고하였습니다.
크게 주의할 점은 없지만 빈봉투를 주고 식권이나 교통비를 서너 장씩 챙겨 가는 者들과, 신랑 측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며 엉뚱한 봉투를 챙겨가는 者들을 조심하라는 것이 특히 뇌리에 와 닿았습니다.
예식이 시작되기 전, 많은 하객들이 축의금 부스를 찾았고,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려 그간 나름 독학한 방법들은 깡그리 잊었습니다. 그저 온 신경은 행여 사깃꾼이나 도둑이 들고 오는 빈봉투 찾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두 차례의 하객 폭풍이 지나가고 친구의 아버지께서 부스로 오셨습니다.
춘부장께서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는데, 자식들의 동의를 얻으시고 마지막 교장을 지내셨던 학교의 운동장 확장을 위해 퇴직금 전액을 기부하신 "진짜 선생님이시고, 진짜 어른"이십니다.
가끔 뵙고 인사를 드리던 사이였지만, 평소보다 더 꼿꼿이 허리를 펴시고 환하게 빛나시는 것을 뵈니 금쪽같은 손녀의 결혼식이 마냥 즐거우셨나 봅니다.
"수고 많네. 힘든 건 없냐?"는 친근한 물음에 저는 웃으며 "빈봉투 찾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농섞인화답을 드렸습니다. 춘부장께서는 마치 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줘라. 빈 봉투가 들어와도 식권은 꼭 줘서 보내라. 원래 우리나라 풍습이 결혼식을 하면 동네 거지들을 불러서 음식을 나눠주고 했었으니 야박하게 끊지 말도록 해라.
있는 자만이 베풀 수 있다는 관용과 배려의 미덕!
춘부장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잠시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친구의 경사스러운 결혼식 자리를 축하하러 오신 손님을 맞으며, 사기꾼이나 도둑을 색출하려는 마음으로 축하객을 대했던 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춘부장께서 그 말씀을 하시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저는 남은 시간 내내 하객들을 맞으며 도둑 찾기를 하였을 것입니다.
춘부장께서 덕담처럼 건네신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는 하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이 부덕하여 처음에는 5~60여 명의 사깃꾼과 도둑 용의자들을 만났으나, 마음을 바꾼 뒤에는 100여 명의 진솔한 축하객을 만났습니다. 애초에 제 마음이 도둑놈과 사깃꾼의 심보였던 것이지요.
춘부장의 가르침으로 터득한 결혼식 축의금을 잘 받는 방법은 너그러움이었습니다. 기쁨을 나누러 오신 이들과 웃음을 나누고, 한 끼의 허기를 해결하러 빈 봉투를 들고 오신 이들에게는 그분들이 부끄럽지 않게 식권을 흔쾌히 내어 드리는 배려였습니다.
진실로 가진 자만이 베풀 수 있는 덕목이지요.
모쪼록 힘든 이웃에 대한 할아버지의 관용과 배려심을 바탕으로 진행된 결혼식이었으니, 새 출발하는 새내기 부부가 건강한 부부생활을 연속해 나가길 응원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