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훈련소 입구에서 헤어지고 무려 160일 지난 뒤에야 겨우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PCR검사서 제출과 더불어 코로나로 동선과 접촉자를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아무래도 대중교통 이용이 불안하니 첫 휴가 나온 막내를 부대에 데려다 주려 합니다. 왕복 12시간의 거리이니 쉬운 운전은 아닙니다. 아내가 저를 보고 "가시고기"라고 웃습니다.
가시고기를 아세요?
과학커뮤네이터 박종현님의 사진자료
동해안 하천의 중류에 주로 살고, 충북 제천시 일원과 일부 서해로 흐르는 하천에 이식된 종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큰 가시고기의 부성애는 눈물겹도록 애잔합니다. 수컷이 만들어 놓은 작은 동굴 둥지에 암컷이 알을 낳고, 암컷은 이내 기진맥진해서 죽어버립니다. 어미 가시고기의 빈자리는 아비 가시고기가 채웁니다. 아비 가시고기는 새끼들이 부화할 때까지 한 숨도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알을 청소하고 천적들로부터 보초를 섭니다.새끼들이 부화할 때쯤, 아비도 결국은 뼈만 앙상한 채로 죽어버리지요. 부화한 새끼들은 둥지 입구를 막고 있는 아비의 남은 살을 뜯어먹으며 영양을 보충하고, 세상으로 나갈 체력을 다집니다.
가시고기의 슬픈 이야기는 볼품없이 작은 물고기의 이야기였습니다만,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인 저에게 가시고기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큰 감동이었습니다.
2000년 유승호 작가의 데뷔작으로 mbc에서 방영된 '가시고기(정보석 주연)'는 누군가의 아비 된 자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또 어느 만큼의 희생을 해야 하는지 마음을 다지고 숙고하게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바탕이 되어 주위에서 엄마보다도 애들한테 더 애정을 구걸하는 아버지를 보면 "가시고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곤 하지요. 팔불출이라 부른 들 대수롭지 않겠지만, 가시고기라 부르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드릴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비였던 남자의 일생을 보면, 인간 세상이 다 그렇지는 않더군요.
신라 말기, 어떤 아비가 재취를 하였습니다. 본 처의 자식들을 어찌나 구박하였던지, 그 자식들은 신라 군영으로 가서 큰 공을 세워 군벌로 성장하였습니다.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르고 아비로부터 버림받았던 그 자식은, 후백제를 선포하고 왕이 되었지요.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견훤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자개는 끝까지 견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의 적이라고 봐야 할 왕건에게 자신의 영지를 넘겨버립니다. 아비에게 버림받았던 견훤, 슬프게도 견훤은 후궁에게 얻었던 넷째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려다가 왕비 소생인 첫째, 둘째, 셋째 아들에게 강제로 폐위를 당해 지금의 전라도 김제 모악산에 자리 한 금산사에 유폐를 당하고 맙니다. 금산사를 품은 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안아준다"라고 하여 모악산(母岳)입니다. 그렇지만 모악산의 넉넉함도, 아비로부터 버림받아 불쌍한 아들이자 자식들에 밀려 난 불행한 아비가 된 자의 분노를 삭여 주진 못했나 봅니다. 절치부심 석 달 후에 탈출하여 철천지 원수였던 고려 왕건에게 투항한 견훤은 세 아들을 죽여 달라며 읍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건에게 군사를 얻어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길잡이를 자청하였답니다.
견훤 왕.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불행한 버림받은 아들이었고, 동시에 애가 닳아 없어질 만큼 슬픈 비운의 아비였습니다. 논산 훈련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견훤왕묘"로 전해지고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대왕의 안식처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습니다. 행여 입대하는 아이를 훈련소에 내려 주고는 들르지 마십시오. 불행한 견훤 왕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눈물이 꾸역꾸역 나더이다.
전 견훤왕묘:충남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22
어린 시절엔 몰랐는데 이제 누군가의 아비가 되고, 아이들을 하나 둘 품에서 떠나보내게 되니, 문득 후백제의 영웅과 그 비운의 가족사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에는 제가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또 누군가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에 교차하는 생각 이리라 미루어 봅니다.
가시고기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살다 간 견훤 왕......
지금은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 진 불행했던 영웅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그와 종교는 다르지만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그의 종교에 맞춰서, 팔불출 가시고기가 두 손 모아 조용히 합장 묵념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