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받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지만, 한 두 번의 짧은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혹시 누가 받아줄까 싶어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
역시,그렇지...... 지난 6년의 세월 동안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일이다. 아무도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가끔 씩 세상살이가 힘이 들 때마다 이 번호로 전화를 하는 이유는 7년 전에 소천하신 아버지의 전화번호라서 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위에서는 전화를 해약하라고 했지만, 1년 동안은 기본료를 내며 늘 충전을 해두었다. 처음에는 부고를 접하지 못하신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전화라도 해오실까 싶어서였지만, 장례식 이후로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휴대폰은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허망함이 밀려들었다.
사회생활을 넓게 하신 분이 아니라서 이기도 했지만, 한 사람의 주변이 이렇게 빨리 정리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이란 참 기기묘묘한 물건이다.
현장 일을 하던 직원이 잠시의 휴식시간에 이내 휴대폰을 꺼내 든다. 겨우 한 줌에 쥐어지는 작은 물체가 全 지구적인 세상과의 연결통로이기도 하고, 속세와 단절하고 고독을 즐기는 시간을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군대에서 휴대폰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난 뒤로 병영사고가 35% 가까이 줄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고, 오지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이가 생명을 건진 일도 다반사로 있다. 복합기능이 추가되며 어떤 사건을 신고하기도 하며 개인의 추억을 보존하는 소중한 기억장치가 되기도 했다.
길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고마운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군중 속에 혼자 있는 뻘쭘함을 가려 줄 음악 장치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에 뒤처지지 않도록 소통을 할 수 있는 가교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숨고 싶을 때 유용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
휴대폰은 창문이자, 동시에 벽이다.
예전에는 공간적인 유품이 필요했으나 오늘만큼은 딱 일곱 자리의 전화번호가 내게 남겨진 아버지의 유품이다.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전화라면 아버지가 계실 그곳에도 연결이 되면 정말 고맙고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