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의 10% 이상이 통항하고 있고, 특히 중동 지역 원유의 절대적인 운송루트인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아 선 배 한척 때문에 세계 무역시장이 출렁거렸다.
주지의 사실이다시피, 선박을 건조할 때는 운하의 사이즈를 고려한 수에즈 규격이나 파나마 규격이라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운송량을 늘이기 위해 운하의 단면 폭보다 긴 배들이 건조되기 시작하며, "에버 기븐호"와 같은 통항 불능을 초래하는 사고는 해상운송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연일 세계의 언론들은 당연하게도 자본주의적인 셈법으로 사태의 추이를 살폈고, 밀어내기라도 할 태세를 갖춘미군 항공모함까지 출동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 하였지만, 천만 다행히도 운하 관리청과 구난업체가 벌인 각고의 노력으로 운하의 통행이 재개되었다. 제방에 박혀 있는 배의 머리 부분을 빼내기 위한 준설작업을 위해 시간당 2000㎥의 모래를 옮길 수 있는 특수 흡입식 준설선인 'MASHHOUR호'가 투입된 결과, 예상되었던 20,000㎥의 모래와 진흙을 무사히 퍼냄으로써 마침내, '에버 기븐호'의 부양에 성공한 것이다.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던 날 오후,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거래처의 한국지사장님께서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셨다.
"이사님! 뉴스 보셨죠? 수에즈 운하에 투입된 그 준설선에 우리가 수출 보냈던 기계가 장착되어 있어요.
이야기인즉슨 , 작년에 그 업체에서 만든 특정 기계를 이집트로 수출해 드렸는데 내가 담당했던 그 기계부품이, 이번에 투입된 특수 준설선이 사용하는 펌프의 중요장치라는 것이었다. 기계는 안전하게 잘 수출되었으며 현지에서 잘 장착되어 이번 준설작업에 아무런 고장 없이 잘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국위선양의 자부심까지 운운하시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중국의 저가 공세에 한국 조선업이 위기인데 이런 일에 한국의 조선부품이 활용되었다니 가히 대한 조선업의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할 듯하다.
단체 톡방을 통해 함께 일했던 회사 직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모두들 자신들이 세계 토픽의 주인공이 된 양 기뻐들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하였던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 더 잘하자고 각오를 다지는 결의를 올린다.
단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한 이역만리의 선박에서 우리 동료들의 손길이 묻은 기계가 세계 무역의 역사에 좋은 모습으로 한 줄을 장식했다.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할 사고이지만, 먼 훗날 누군가 수에즈 운하의 사고를 떠올린다면 그 사투 어린 수습에 우리 한국인들의 손길이 함께 있었음을 자랑스레 얘기해주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세계 항해사에 한 페이지가 기록될지도 모를 이번 일에 함께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전 세계가 혼란한 와중에도, 서로를 잊지 않고 치하하며 격려하고, 감동을 나누는 낭만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