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아주 특별한 음식입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 난 패스트푸드 점들 덕분에 지금이야 흔해 빠졌지만, 1970년 대의 지방 시골마을에서는 무지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햄버거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외국 동화책이었고, 외국영화에서 실물을 가끔 볼 수 있는 "그림의 빵"이었습니다.
영국군 부대에서 일을 하셔서 다방면으로 박식하셨던 아버지께서 맛과 조리법에 대해 이러저러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청바지를 입은 코쟁이 배우가 한 잎 베어 물 때 빵 사이로 삐져나오던 야채 부스러기와, 주인공이 입 주위에 묻은 소스를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내던 모습과는 충분한 매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쯤, 서울 본사에 업무를 보러 다니시던 아버지께서는 추풍령휴게소에서 쇠고기 햄버거라는 걸 사 오셨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그때 당시에 700원...... 짜장면이 250 원했으니 만만챦은 가격이었죠.
지금처럼 잡육을 다진 패티가 아니라 언양 갈비처럼 쇠고기의 육질이 그대로 씹히는 패티였습니다. 패티 외에 안에 든 내용물이라곤 아무 소스도 없는 생양파 슬라이스 몇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료가 아닌 꼴을 먹으며 자라 난 쇠고기 특유의 향과 육질, 불향이 살짝 지나간 듯한 독특한 향과 간이 살짝 베어 나오는 육즙, 게다가 생양파 조각의 아삭한 식감과 느끼함을 잡아 주는 매운맛이 빚어낸 조화로움은, 지금의 패스트푸드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이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워낙 햄버거를 좋아하다 보니 보통 2개 정도가 제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늘 부족해하는 뱃속의 거지를 알아차리셨던 걸까요. 언젠가 한 번은 10개를 사들고 오셔서 실컷 먹어보라시더군요. 앉은자리에서 네 개를 먹어치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보다 훨씬 꺼서 초등학교 3학년이 단 번에 먹기엔 결코 작지 않은 사이즈였습니다. 지금도 추풍령휴게소를 지날 때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그저 맛있는 음식일 뿐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다 보니 퇴근길 막내의 간식 요청이 있으면 m사의 햄버거를 자주 사다 주었습니다. 입 맛도 유전인지
막내도 햄버거를 무척이나 좋아하더군요. 첫 휴가를 나온 막내아들이 부대를 나와서 처음 먹고자 한 것이 햄버거였습니다.
아들녀석에게 햄버거를 처음 사다 준 것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손주들에게 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줄을 서서 햄버거를 사다주시던 아버지 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피난시절 영국군 부대에서 일을 하실 때 맛보셨던 것이니 제게도, 손주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었던 천상의 맛이었겠죠.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네요. 세월이 흘러 훗날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뵈올 수 있게 되면 무릎 꿇고 앉아, 손톱이 문드러지고 손바닥이 닳도록 빌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