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제 첫 짝지는 소아마비를 앓아 양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다른 수업시간은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체육시간과 소풍은 제게는 다소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짝지랑 2인 1조 경기를 하거나 포크 댄스교습을 받는 체육 시간은 짝지가 함께 할 수 없었기에, 늘 주전자에 물을 셔틀 하거나 친구들의 소지품을 지키는 당번이 되곤 했지요. 마찬가지로 학교 뒷산으로 소풍을 가서 다른 친구들이 짝지랑 커플로 각종 게임을 할 때도 게임 교보재 준비나 기껏 보조 심판 역할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한 반이 보통 70명 선이었는데, 하필 제 짝지가 그녀였다니요... 어린 마음에 그게 참 싫었습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활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짝지의 장애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손해를 보는 듯한 상황이 제게 불러일으킨 '손해 혐오증'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긴 책상 중간에 줄을 그어 놓고 그 애의 물건이 선을 넘어오면 뺏기도 하고, 연필을 부러뜨리기도 하며 짝지를 울린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선생님의 눈에 띄어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지요.
2학년을 올라가면서 담임선생님은 바뀌었지만, 학생들은 반편성 없이 그대로 진급이 되었습니다. 새로 짝지 편성을 하는 날, 키를 속여가며 예전 짝지를 피하려고 하였지만, 어김없이 선생님은 제 손목을 잡아 그 짝지 옆에 데려다 세워 놓았습니다. 2학년의 학교생활도 여자 짝지와의 달콤함(?)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요.
3, 4학년은 '운이 좋게도(ㅠ.ㅠ)' 그 애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남들처럼 짝지와 발을 묶고 2인 3각 달리기도 하며, 볼을 주고받는 배구연습도 하고, 소풍 때는 커플게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수업의 일상이었던 일들이 제게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5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되었는데, 마치 당번으로 지정이라도 된냥, 어김없이 그 소녀의 짝지는 제 숙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 소녀가 결석이라도 하는 날이면 수업 공책이랑 다음 날 준비물 등 각종 알림들을, 한 보따리 챙겨서 그 아이의 집에까지 가져다주어야 했고, 언덕배기에 있는 그 애의 집을 다녀오면 저는 녹초가 되곤 하였지요.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짝지를 바꾸셨는데,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려 짝지를 바꾸고 나면, 곧 그 애의 엄마가 학교를 다녀가셨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 후에는 꼭 제 짝지의 자리에는 그 애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음에도 어렴풋이 두 일의 상관관계가 모종의 청탁 관계가 있을 것이란 의심을 하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6학년이 되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다른 급우들이 짝지의 손을 잡고 포크댄스를 배울 때, 짝지와 함께 할 수 없는 저는 여전히 물주전자와 댄스를 추어야 했습니다. 사실, 5학년 때부터는 어지간히 싫어하는 티를 냈던 것 같습니다. 더 자주 다투기도 했고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하였던 듯합니다. 정확한 이유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번을 울리기도 하였고요...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해 놓고 기억조차 못하다니 이런 죄스런 일이 있을까요.
숱한 우여곡절의 시간들은 지나가고, 마침내 졸업식 날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교실에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짝지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저한테 뭔가를 불쑥 들이밀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풀어 보니, 귀하디 귀한 샤프 한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제도 샤프! 저희 집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 형아들이 쓰던, 당시로서는 제법 고급 샤프였지요. 그러나 빠이롯뜨에서 막 출시하기 시작한 '흔들어(후레 후레) 샤프'가한창 TV광고를 하며 대세몰이를 하던 때인지라, '이왕 줄 거면 흔들어 샤프 사주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뻔뻔하고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그어린 마음에는 1500원짜리 제도 샤프보다 800원짜리 흔들어 샤프가 더 갖고 싶었으니, 그 시절의 저는 참으로 어리고 어리석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크게 미안하거나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그 짝지를 생각하면 부쩍 미안함에 숙연해집니다. 사실, 그 소녀를 찾으려고 동창회나 지역 장애인 단체, 각종 연관성 있을 법한 SNS 등도 찾아보고, 나름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었습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허약체질이었던지라 혹시라도 먼저 세상을 뜬 것인지, 아니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한국을 떠난 것인지 도무지 행방을 알 수가 없네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쩌면 제게는 사과를 할 수 있는 큰 행운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떠날 세상이니 한 떨기 죄스러움 섞인미련을 남겨 두는 것 없이 가고 싶습니다. 만약 그런 행운을 만나게 된다면 짝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내 모든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시 때때 그대에게 상처 주었던 것을 너무 어렸던 탓이라 고백하고 싶습니다.
충분히 사려 깊지 못했고, 신중히 배려하지 못했음을 사과합니다. 행여라도 내가 스크래치 낸 짝지의 상처가 너무 크고, 깊이 흉 져 있다면 무릎을 꿇고서라도 사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