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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Jan 24. 2021

천원의 향기

퇴계 선생의 매화 사랑

아침에 아파트 화단을 걷다가 반가운 친구를 만났습니다.

바삐 사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이에 아파트 화단에 '매화'가 자리잡은 것을 보고 어찌나 놀랍고, 반가웠던지요. 워낙 따뜻한 남쪽 동네인지라 눈이 없으니 '설중매'라 이름을 붙이기에는 다소 억지인 듯 하고, 냉랭한 기온 탓에 응달에는 아직 얼음이 있으니 '동중매'나 '냉중매'정도라 칭하면 무리가 없을 듯 했습니다.


"매난국죽"이라는 사군자의 으뜸으로 지칭된 매화는 조선사회에서는 지식인들의 멋이자 교양의 상징이었는데,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 중에 '퇴계 이황'선생만큼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이도 보기 힘듭니다.
매화와 연관된 시 91수를 모아서 《매화시첩》이란 시집으로 묶어두었고, 퇴계 문집에 실린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107수나 되는 '매화시'를 남겼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가히 "매화밴드의 방장"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특히나, 선생은 매화를 그냥 매화라고 부르는 것 조차 삼가할 정도였는데, 선생의 시 속에서 '매화'는 흔히 "매형(梅兄)" 아니면 "매군(梅君)", 때로는 "매선(梅仙)"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퇴계가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를 촉매로 맺어진 사랑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방년 18세였던 관기 '두향'은 48세 중년의 중후한 멋과 젠틀함을 뿜뿜하는 퇴계 선생에게 반합니다.
몇 번이나 저돌적으로 사모의 정을 밝혔으나, 워낙 기개와 자세가 꼿꼿하여 실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지요.
역시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조선성리학의 오피니언 리더 답게, 요즘 세태에 흔히 만나는 "숫컷"은 아니었나 봅니다.
우리 시대에도 자칭 교양가니 재력가니 하며 아무 이성에게나 추근대시는 잡종들은 꼭 배워두어야 할 진짜 신사도 라고 생각합니다.
동짓달 긴긴 밤을 바늘로 허벅지 찔러가며 지새우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전해 듣고, 꽃 빛깔이 희면서도 푸른 빛이 감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서 그에게 선물을 합니다. 진귀한 매화에 담긴 '두향'의 정성에 감복한 퇴계는 드디어 마음을 열고 '두향'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답니다. 후일에 '두향'이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고 하네요.
천 원 권 지폐에는 퇴계의 얼굴과 더불어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푸르스름한 지폐 색깔과 어우러진 매화 그림은 마치 '두향'이 선물했다는 푸른 빛 매화를 짐작하게 합니다.

퇴계가 1570년 12월 8일 아침, 7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유언은 창문 밖 정원의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저 매형(梅兄)에게 물을 주라”였다고 하니 그의 매화사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겨울 한파라는 고난에 지지 않고 인내하며 묵묵히 드러내는 매화의 고결한 기품,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봄을 알리는 '희망'이지 않을런지요.
왜 지금 우리사회에는 '매화'의 고결함을 '매형'이라 호칭해주는 원로가 안계신것일까요.
성철스님, 김수환추기경님, 함석헌 옹 등등...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여기저기 펼쳐 질 봄꽃의 향연에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언제쯤 그 날이 올까요...


누가 "봄이 언제 올까?" 묻거든, "이제 막 부산에 도착했다"고 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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