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 새해 첫 날이 다가 오면 주변에서는 일출을 맞으러 가신다고 북적입니다. 그런 분들과는 달리, 솔직히 저에게는 '신년일출'이란 의미는 또 하나의 낯선 고민 덩어리에 다름아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신년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이요 포부이기보다는 내가 가져야하는 책임감이었고, 의무였고, 감춰져 있던 새로운 고민덩어리들을 끄집어내서 한 보따리 던져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새 해"를 맞이하는 것에 덜컥 겁이 먼저 났었나 봅니다.
매 년 그러했듯이 올 해도 여전히 '새 해'라는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하고, '지는 해'를 보내는 저만의 묵은 의식을 치르기 위해 일몰산행을 택할 것입니다.
일몰산행을 하자면 해맞이 만큼이나 유난을 떨어야 합니다. 무에 그리 싸보낼게 많았던지 정오부터 산등성을 따라 걷고, 또 걷고... 마음으로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가는 해가 마지막 빛을 잃기 직전에 올 한 해 제가 가졌던 고민, 아픔, 슬픔들을 한 톨 남김없이 꽁꽁 쟁여 안겨줍니다. 광인의 목청으로 '잘가라 이년아' 욕도 하고, '수고많았다 이년아, 고맙다 이년아' 위로도 해보지요.
울컥, 가는 해에게 일견 미안함도 없지 않지만, 제깟 녀석이 년 중 내내 저에게 던져 줬던 슬픔들이니 몽땅 돌려주어도 문제될 것 없이 마땅할 바이겠지요.
작년의 일몰의식은 좀 덜 씁쓰레했던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한 '친구'가 동행해주어 그 한 해의 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반절 나누어 내가 들어주고, 내 고민을 반절 나누어 친구가 들어주니 서로의 마음 짐이 약간은 홀가분한 송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해를 송별하며 마주 떠오르던 마지막 달도 서녘으로 떨어지는 해에게 작별하고, 무거운 짐을 조금 나누어 짊어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걸었던 친구는 상처가 아주 큰 친구입니다. 금정산성 40여 리를 함께 걷는 내내, 하릴없이 땅만보고 한 숨을 뿜어낼 만큼 무거운 등짐에 눌려 살아 온 친구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너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를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겠니.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진 냥, 너와 나눈 몇 마디로 너의 상처를 내가 다 이해한다는 따위의 가소로운 말은 감히 하지 않겠다. 하지만, 친구야... 네가 가진 그 상처들의 크기보다는 너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의 가족들, 너의 친구들, 그리고 네 자신이라는 스스로의 기준에서도 너의 존재감은 월등히 크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러하고... 친구야!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작은 방에 홀로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갖게 되는 원초적인 고통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친구야! 어쩌면 그의 말처럼 우리의 불행들이 드넓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감은 세상보다 천배만배는 크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꾸나... 술에 찌들고, 피곤에 녹초가 되고, 약에 취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될지라도, 넓디 넓은 우주에서 갖는 우리 존재감의 크기는 잊지말자.
내 친구야! 분명,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하는 존재의 이유 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의 흉터따위는 접어두고, 남은 인생 신명나게 살다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