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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Mar 22. 2021

뒷모습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휴가 복귀시키며

어느 날엔가 영남알프스에 자리 잡은 해발 1,086m의 영축산을 올랐습니다. 몸을 날려버릴 기세로 휑한 서풍이 불어 닥치던 곳에서 혼자 걸어가는 이름 모를 나그네를 만난 적이 있었더랬죠.

영축산 정상에서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십리 억새 상벌"을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걸어가시는 산객의 뒷모습이 쓸쓸하기도 하고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여, 눈에서 보이지 않 동안 한참을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유유자적 마른 억새 밭을 홀로 걸어가는 모습 때문에 그의 삶은 참으로 고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인 듯도 하고 , 아닌 듯도 한 길을 걸어가던 그에게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가 지나 온 궤적이 길이며, 그가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길이고, 그가 멈추는 곳이 쉼터일 것이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혼자만의 호젓한 그의 걸음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느꼈습니다. 사위를 개의치 않는 그의 뒷모습이 어지간히 아름다웠습니다.


지난밤, 첫 휴가를 나온 막내를 부대 입구에 내려줬습니다.

잘 내려가시라 인사하고는 휙 돌아 위병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껍데기는 이미 어른이지만 알맹이는 여전히 애리 애리 한 소년입니다.

국토와 민족수호라는 대의명분은 있지만, 저 어린것이 살인 병기를 다루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살인을 해야 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다니 참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하는 운명은 가혹합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좀 더 자주 봤을 터이지만, 시국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1년은 있어야 저 문을 열고 나올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휴가를 모아서 조기 전역을 신청하겠다고 합니다.

저도 만기 전역자이니 아들이 열고 들어가는 저 철문 너머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군대가 뭐 얼마나 변했을까요.

산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뒷모습을 볼 때는 그를 알지 못하기에 부러웠지만, 아들이 보여 주는 뒷모습은 이미 제가 소싯적에 지나왔던 길이기에 먹먹해집니다.


저도 누군가와 작별하며 수없이 돌아섰던 기억이 있으니 뒷모습을 누군가는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아들의 뒷모습은 먹먹하고  힘 빠졌으니,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그때 나그네처럼 아름다운 뒷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없이 많이 보였을 저의 뒷모습,
제가 남기고 온 뒷모습은 어땠을까요?


지나치게 앞모습에만 치중하다가 뒷모습은 소홀히 한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네요. 늘 뒤통수가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 최소한 아들들에게만큼은 당당한 뒷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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