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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pr 16. 2021

장어덮밥 - 히츠마부시

나고야식 장어 덮밥

*특정 가게를 홍보하는 글이 아닙니다. 불편하신 분은 스크롤을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바람(風)을 타고 내(川)를 거슬러 오른다는 정력의 상징 풍천장어를 처음 맛봤던 일은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하나는 씻은 묵은지를 얹어 먹었을 때 느껴진 탱글탱글한 장어 살의 탄력과 씹을수록 베어 나오던 장어 기름이 혀를 감싸던  환상의 맛이었다. 그리고 산란을 위해 3000km나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 근처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6개월을 헤엄쳐 간다던 장어의 번식 본능과 새끼는 다시 6개월을 헤엄쳐 어미가 놀던 민물로 회귀한다는 얘기는 장어요리에 경외심마저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먹고 있는 장어가 회귀하던 새끼이거나 산란을 위해 바다로 갈 적응 훈련을 하던 어미라는 사실.

유튜브를 보다가 근처에 이름 난 일식 장어덮밥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도시이다 보니 왜색 음식이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 편이라서 일식 장어덮밥이 귀한 음식은 아니다. 이 곳은 '달인의 집'이라기보다는 8대를 이어 220년 이상된 일본 장어덮밥집에서 요리를 배워 왔다는 요리사라서 더 호기심을 끌었다.

장어요리의 달인 김태우! 아직은 장어 같은 팔팔함이 느껴지는 그는 100년이 넘은 옻칠된 반합을 수료의 증표로 물려받을 만큼 성실하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 아무나 달인 칭호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춥지 않은 날인데도 적당히 따뜻한 엽차가 제공된다. 돈보다는 인간을 더 우선시하던 예전의 식당에서는 너무나 기본적인 일이었다. 추운 날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엽차를, 더운 날은 잘 끓여 내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힌 오찻물을 누런 줄이 죽죽 그어진 사기 겁에 받쳐 내는 것이 기본이었다.


IMF를 지나오면서 많은 것이 각박해졌다


요즘은 외식을 가면 거의 모든 식당들이 출처를 알지 못하는 찬물을 '던져'주는 것이 다반사이다. 손님을 위해 물을 데울 시간이나 물을 얼릴 시간조차도 셈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리라. 겨우 엽차가 간직한 온도 따위로 휴머니즘을 운운하는 것이 다소 과장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식전 미온수로 혀의 근육을 풀어 주고, 식도를 틔워 주는 인간미 넘치던 예우가 우리 시대가 지나면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손님 접대의 기본일 것 같아서 아쉽다.

연인과 마주 앉은 공간만큼이나 단아한 곁음식들이 이내 테이블을 채운다. 함께 자리한 오묘한 모양의 대나무 산초 통을 칭찬하는 것은 잠시의 눈요기였고, 숯불 향이 가득한 '히츠 마부시'의 등장에 눈을 떼지 못한다.

'히츠 마부시'라는 이름 그대로,
"그릇(ひつ [櫃])이 눈부시다(まぶしい)"


갈색이라기보단 황금색 찬연한 양념이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 맞나 보다. 찌고 굽고, 네 번을 반복하고 8시간 이상의 숙성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달인의 장어 카바야키가 오감을 자극한다.

숟가락 그득 밥을 뜨니, 제법 묵직하다.
왕복 6000km 이상을 쉼 없이 헤엄친다는 장어의 유연함이 입안을 휘감는다.

장어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다시물인 듯도 하고, 찻물인 듯도 한 "오차즈케"에 달짝지근한 왜간장이 버무려진 밥을 말아먹는  것은 호불호가 있는 섭취법이지만 엄지를 위로 올리고 커진 눈으로 후루룩 짭짭...물만난 밥을 탐닉하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 중에 누구도 불호는 없는 것 같다.

오늘 부지불식 간에 찾아가서 오차즈케에 말아먹은 나고야식 장어덮밥은 그저 흔한 히츠마부시가 아니라,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의 봄을 버텨내기 위한 애절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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