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 일이 밀려 출근을 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는 다짜고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집니다.
"현충일 묵념은 했냐? 거기도 추모 사이렌이 울렸어?"
그러고 보니 시끄러운 기계소리 때문인지 사이렌이 울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몰라 여기 지금 시끄러워서..."라고 했더니, 친구가 "나는 너무 시끄러워서 묵념에 집중이 안된다"라며 살짝 짜증스러운 하소연을 합니다. 친구의 집은 주민센터와 바로 지근거리라서 아마도 사이렌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나 봅니다.
"그냥 진혼의 나팔소리 같은 잔잔한 음악이면 될 텐데"
아마도 친구는 군대 있을 때 늘 들었던 진혼의 트럼펫을 생각했나 봅니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문득 논산훈련소에서 첫날밤에 들었던 취침나팔 소리가 생각납니다. 원래 슬픈 곡인지, 아니면 가족을 떠나와서 낯선 환경에서 앞으로 허무하게 보내게 될 청춘이 슬퍼졌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나 슬프고 애잔했던지.
복무 중에도 그날의 애잔함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전역 후, 가끔 여행 중에 버스킹 중인 트럼펫 연주자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추억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이리도 슬픈 음악을 만든 것일지 궁금해 이리저리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1862년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중대장이었던 '엘리콤'은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을 정찰하던 중,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던 남군 병사를 발견합니다. 인도주의를 발휘하여 정성껏 치료하였으나 그 병사는 숨을 거두고 말았답니다.
'엘리콤'은 불을 켜서 죽은 병사의 얼굴에 묻은 흙과 피를 닦아주다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남군 병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지요. 음악도였던 아들은 아버지 몰래 남군에 입대하여 참전했던 것입니다. 죽은 아들의 주머니에서 겨우 24개의 음표로 악보가 그려진 종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엘리콤'은 자신의 상관에게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들이 마지막 남긴 음악을 연주해 줄 군악대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남, 북군은 전쟁 중이라서 "적군의 장례식에 군악대를 줄 수는 없다"는 상부의 결정으로 단 한 명의 악사만을 허용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콤'은 고심 끝에 트럼펫 나팔수를 선택하여 연주를 하였고, 그 후 이 음악은 전 미국으로 퍼져나가 진혼곡으로서 뿐만 아니라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병사들의 단잠을 부르는 취침 곡으로 남, 북군을 구분하지 않고 채용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미군과 많은 나라의 군대에서 사용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연주곡 중에서 1964년 이탈리아의 니니 로소(Nini Rosso)라는 연주자가 약간의 재즈풍을 가미해 연주한 <밤하늘의 트럼펫>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단 한 명의 트럼펫 악사가 부르는 이른바 <적막의 부르스>, 수료 때까지 결국 그 나팔수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문득 논산 훈련소 뒷동산에서 애달프게 들려 나오던 그 소리가 생각나는 현충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모든 영령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훗날 기회가 되어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면 꼭 한 번쯤은 야심한 밤 동네 뒷산 꼭대기에 올라 달빛에 실어 동네 사람들의 마음으로 날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