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도시에 살며 불편하거나 간절한 것 중에 하나를 들자면 문화적인 빈곤을 꼽을 수 있다. 연극,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등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행사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데다, 서울에서는 거리에서도 종종 만나진다는 연예인을 직접 볼 기회도 거의 없으니, 무슨 연예인의 사인회나 영화제 같은 행사가 있으면 행사장 일대는 야단법석이 나기 일쑤이다.
그나마 코로나 탓에 지난해부터는 가끔 열리던 가수들의 지방 공연도 줄줄이 취소되어 문화갈증의 답답함은 더욱 커져 간다.
마침, 국문학도 출신인 '친구의 친구' 중에 희곡 작가가 계신데, 극단의 홍보까지 겸하고 계신 분이라 필자에게 관람 초대 문자가 왔다. 게다가'무료입장'이라는엄청난 동기부여까지 해주시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화 빈곤의 와중에도 서점이나 영화관뿐만 아니라 가끔은 가수들의 콘서트도 보고, 댄서들의 공연장에도 가곤 했지만, 코로나 탓에 다중 시설을 피하다 보니 여간 달콤한 유혹이 아니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극단도 힘들 터이니 무료입장은 어불성설이고 혼자 가기에는 쓸쓸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차에, 마침 황금주말의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준 고마운 친구가 있어 함께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극은 이미 초연 삼십여 년이 되어가는 연극계의 바이블로 불린다는 "유리 동물원"이다.
시대를 지나오며 많은 작가들과 배우들에 의해 조금씩 자의적인 해석이 첨가되기는 했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굳이 이 자리에서 연극의 내용을 평론할 필요는 없겠다. 물론 극을 평할 수준도 되질 않고, 게다가 다중 집합 금지라는 요즘 시국에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짓을 해야 했을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는 것은 결코 마뜩챦은 일이다.다만, 공연의 처음과 마지막, '톰'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올 때의 밋밋한 관객들의 반응 때문에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솔직히 지방에서 성장하고 살아오다 보니 공연이나 행사를 접할 기회가 자주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즐기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중고교 시절, 가끔 선생님들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소개하고 추천해 주신 분들이 계셨지만 그분들도 "즐기라"고만 하셨지 어떻게 즐겨야 더 즐거운지를 알려주지는 않으셨다.그저 "조용한 관람, 움직임 최소화, 휴대폰 끄기, 취식 금지" 정도의 기본 예의만 주입식으로 강요받았을 뿐, 공연자와 동화된 관객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물론, 그것들을 즐기는 거창한 방법이 따로 있다는 것은 아니다. 유난스럽다 할 수 있을 얘기지만, 재작년에 근처 면소재지에서 유명가수의 개인 공연을 보았던 적이 있다. 겨우 면 단위의 아주 작은 소도시이지만 가수의 고향이 가까워서 택한 고마운 발걸음이었다. 물론, 발라드 풍의 가수이다 보니 스탠딩 떼창을 한다거나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해야 할 대목은 없었다. 공연 내내 절간 같은고요함과 누군가 바늘을 떨어뜨리면 시끄럽다고 쫓겨날 것만 같은 정적 속의 무대가 이어졌다. 마침내 그 침묵 속의 열정적인 공연이 끝나고 잠시의 암전 후에 환한 조명이 장내를 밝혔다.
하지만, 아뿔싸
동작이 빠른 몇 분은 이미 외투를 챙겨 입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커튼콜을 외치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가수를 그냥 보내다니.아니, 이 사람들은 벌써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본전을 뽑지 못했다.
"앵~~~ 콜!"이라고 박수를 치며 소리치자 일순 장내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마치 저 인간 뭐냐 하는 듯한 그 낯 뜨거운 시선을 견디고 앙코르를 두세 번 목청 껏 외친 후에야 겨우 몇몇 동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가수 분께서는 무대 위에 다시 등장해 소중한 앙코르곡으로 내 낯뜨거움을 식혀 주었다.
커튼콜을 안 한다고?
웃어도 되는지, 어느 타임에 박수를 쳐야 하는지, 심지어 공연이 완전히 끝난것인지 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들은 얘기이지만, "앙코르를 언제 할지 몰랐다"는 수군거림이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들이 무식하거나 소양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지입지적 환경으로인한문화 빈곤자들이다 보니즐기는 방법,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감정 표현보다는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유교적인 교육관이 훨씬 강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수들의 공연장에서 떼창을 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 대고 함께 춤을 춘다. 그들처럼 내면의 동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클래식 음악회를 가서는 어느 부분에 박수를 쳐야 하는지 잘 몰라, 늘 옆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다.
예전에 함께 음악회를 갔던 친구에게는 손뼉 쳐야 하는 대목에 옆구리를 살짝 찔러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피아노 연주의 악장이 바뀌는 사이인지, 아니면 음악이 완전히 끝난 것인지 도통 모르는 막귀다 보니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고백이 부끄럽지는 않다. 단지 문화행사를 접하지 못하는 문화기회 차상위계층일 뿐이지, 공연자와 교감하고 즐거움을 못 느끼는 문화감성 차상위계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미안한 대상은 무대에서 오만 열정을 뿜었는데도 제대로 박수를 받지 못하는 공연자들이다.
또 기회가 된다면 '점잖, 정숙, 예의'라는 내 마음의 '유리 동물원'을 어서 빨리 깨버리고, 무대 위에서 가수나 배우들과 어우러져 진정한 문화인이 되어 보고 싶다.
*코로나로 안 어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특히 다중집합이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한때 유명 조연이었던 모 연극 배우는 생존을 위해 막노동 부업을 뛰고 있고 관광버스를 하시던 산악회 형님은 차를 팔고 공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가수는 노래를 하고, 배우는 연기를, 개그맨은 코미디를 하는 시절이 빨리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잘하는 일을 잘하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겠지요.
십시일반,
주위를 돌아보시고 힘든 이웃이 계시다면 우산을 받쳐주기보다는 함께 비를 맞아 주시는 주말을 호소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