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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ug 23. 2021

승무(僧舞)

글쟁이 믿지 마라

"삐릭~삐릭~"

브런치의 '글쓰기 알림'은 눈치도 어김도 없이 울려 댄다. 일주일에 두 글을 올려보리라 설정을 해 둔 탓에, 매주 두 번씩은 고요한 저녁의 정적을 깨뜨린다. 그러나 덥석 앱을 켜지 못한다.

근래 들어 글쓰기가 두렵다. 더 정확히는 부끄럽다. 사랑하는 연인의 자조 섞인 한탄을 듣고 난 후였다.


나만의 시어(詩語)가 없다
나도 나만의 시어를 갖고 싶다



내 글을 돌아보았다.

솔직히 국어에 약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순서가 잘 정돈된 글, 특정한 현상을 잘 설명하는 글은 작은 재주로도 충분히 쉬운 글이다. 가끔은 글을 잘 적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글을 돌아보았더니 연인의 빗댐이 옳았다.  "나만의 시어(詩語)"는 없었다. 그저 단어 배열, 말장난, 언어유희를 해왔을 뿐이다.


여러 방면으로 글쓰기 경로가 생기고, 예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출판을 할 수 있는 길이 생기다 보니 주위에 너도나도 등단작가, 출판작가를 자칭하고 다니는 이들이 많다. 돌아보니 나의 문학적 허영도 그들의 허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sns에 글쓰기를 쉬며 근래 1~2년 사이에 발표된 비유명 시인들의 작품 백여 편을 읽어 보는 호기를 부려 보았다.

단어의 순서를 조금 바꾸고 뜻이나 용도가 애매하지만, 단순히 현란하기만 한 단어들을 잘 조합해서 나열하면서 감성 시를 썼다고 으스댄다.

잘 읽어 보면 그냥 일상의 단어들이다. 지상파 방송의 뉴스에 나오는 단어들을 잘 배열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안타깝게도 작가만의 詩語가 없다.

지방 서예대전에도 돈으로 상(賞)을 사서 등단 서예가라는 명함을 새기고, 소도시 미술대전이나 문학공모전에 어설픈 출품을 하고 등단작가 행세를 하기도 한다.


글쟁이 믿지 마라


브런치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sns에 글을 올리다 보면 내 글들을 읽고, 맹목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늘 "글쟁이 믿지 마라"라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유명 작가들의 망가진 사생활에 실망한 내 경험을 얘기해주는 것이다.

시인은 되기 글러 먹은 듯하고, 나만의 단어로 세상을 그려 내는 진짜 글쟁이가 되어 보고 싶다. 나만의 詩語를 가지고 글을 쓰고, 언행이 일치하는 글을 쓰고 싶다. 단지 단어들의 조합으로 허세 떠는 가짜 작가를 탈피하고 싶다. '별이 반짝인다'가 아니라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도 간절히 나만의 詩語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조지훈' 시인의 <승무> 앞에서 우두망찰을 맛보았다.


우리 시대에도 <승무>를 만날 수 있을까?

조지훈시인기념관 (경북 영양)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대문사진은 무형문화재 8호 이수자이신 류근영님의 <승무>입니다. - 수원성 화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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