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뒤척이다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가슴의 통증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아무래도 골병이 단단히 들었다. 날씨가 궂으면 작년에 부러졌던 오른쪽 갈비뼈들에서 약간의 통증이 감지된다.
똑같은 업무를 25년 가까이하다 보니 살짝 방심한 탓도 있었고, 업무 진행이 느려지다 보니 주의, 집중이 흐트러진 탓도 있었다. 그나마 5m 높이에서 추락하여 늑골 3대 골절이라는 경상(?)으로 끝난 것은 실로 천운이었다.
이런... 또 골절이네
추락 후에 땅을 딛고 일어서며 알았다. 예전에도 두 번 씩이나 오른쪽 왼쪽에 걸쳐, 골고루 골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보니, 대번에 이 찌릿찌릿한 통증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업무를 책임지고 진행할 보조직원이 없다 보니 골절의 통증을 앙다물고 견디며 일을 끝내 줘야 했다.
사진의 특정 회사와는 무관합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배에 실어 미국으로 출발시켜야 할 컨테이너 작업이었기에 중단할 수가 없었다. 업무가 중단되고 배를 놓치게 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신용 몰락을 불러올 것이기 너무도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부하직원들이 흔들릴까봐 애써 안 아픈 척 웃음을 머금어야 했다. 계속해서 업무를 진두지휘해서 드디어 컨테이너가 회사를 떠나고 그제야 부하직원 중에 한 명을 불러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시던 충무공의 마음이 또한 이러하셨으리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늑골 골절은 안정과 진통제 외에는 별다른 치료가 없다. 그렇게 2~3일 출근을 하던 차에, 별 기대를 하지도 않았던 보험처리가 되어 60만 원이라는 위로금이 입금되었다.
집에 있기는 싫고, 회사는 더더욱 벗어나고 싶고.....
나는 나에게 휴가를 주기로 결정했다. 지난 25년의 세월 동안 1년 365일을 늘 고객 대기 상태로 지내다 보니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쉬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행동에 회의가 들었다.
늑골 3대의 폐쇄성 골절, 예상보다 큰 부상이다. 기본적인 통증치료를 진행하며 회사 책상에 앉아 나머지 서류 업무를 보다가 문득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이 들었다.
억만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책임감이라는 자기만족 때문에 휴일도 휴가도 없이 지나온 세월들, 잦은 부상에도 그 흔한 입원 한 번 한적 없이 출근을 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분골쇄신의 각오로 일을 했어도 비자발적 퇴사의 끝은 언제나 아무런 보람이 없는 착취의 세월이었다.
즉흥적으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운전을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렌터카도 예약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며 떠오르고 까마득히 구름 아래로 회사가 보였다. 내 강박적인 책임감이 있던 곳이다. 나한테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들어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나를 위한 나 만의 휴가!
학부시절 등록금 마련을 위해 선택했던 막노동의 길이 평생 직업으로 연결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그 지난했던 직장생활에서 처음 가져 보는 완벽한 일탈이다.
젠장! 그 첫 휴가가 갈비뼈를 판 돈으로 떠나는 휴가라니
갈비뼈를 도난당한 아담의 깊은 휴식이 이러했을까. 그렇다면, 또 모르지.....
혹시 낯선 여행지에서 이브를 만나게 될지도
미켈란젤로 〈이브의 창조〉 프레스코 / 170×260cm / 1509~1510년 제작 / 시스티나 성당 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