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군탈체포조의 일상을 다룬 DP라는 드라마가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했다. 병영생활을 다룬 이야기라는 소개를 보고는 애써 시청을 회피했다. 솔직히 나에게도 삼십 년이 훌쩍 지났건만 내가 겪었더 군생활은 매일 반복되는 구타와 얼차려, 착취와 방관이 일상인"개 같은 날"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생활을 리얼하게 다루는 드라마가 적다보니워낙 여기저기 많은 경로로 내용이 노출된다. 결국은 전편은 아니지만 단편적으로나마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었다. 평론가들의 갑론을박처럼 놀라운 드라마였다. 병영 내무생활의 실상에 대한 리얼함이 놀라웠고, 내가 현역이던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이 배경인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큰 아들은 상반기에 무사히 만기 전역을 하였지만, 막내가 전방부대에 현역병으로 있다 보니 불현듯 내 오래전 기억들이 오버랩되며 막내의 거취가 심히 불안해졌다. 사실, 막내는 누가 봐도 허약체질인 데다가 내성적인 성격인 탓에 어떻게 현역병 판정이 됐을까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러다 보니 더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은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폰 사용이 된다는 것이다.
괜찮아요! 아빠. 그건 옛날 군대 얘기죠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막내의 목소리는 생각 외로 씩씩하다. 아무 걱정 마시라 얘기하지만, 군대가 달라져봐야 얼마나 달라졌을까. "대한민국 2%의 행운아들만이 간다"는 절대 행운 보직을 마친 큰아들도 가끔은 어려움을 토로했었는데, 출입까지 자유롭지 못한 전방 부대에 근무하는 막내는 오죽하겠는가.
강제징용으로 인한 민족차별,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월남전 파병이라는 큰 줄기를 이으며 대한민국 국군은 인간성 말살의 집단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목숨을 담보로 살인 훈련을 해야 하니 그 긴장감이야 이루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또한, 악습을 끊으려는 누군가의 희생은 언제나 조직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들먹이는 자들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방관자일 때가 많았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도 나서질 못했다. 그리고 그 악습은 우리의 아들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고난 가득했던 군대생활을 잘 이겨내고 전역한 우리 예비역들조차도, 군인이라는 예우보다는 "군바리"라는 비하에 더욱 익숙하다.
문득 케빈 베이컨이 열연했던 <챈스 일병의 귀환>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전사한 병사의 운구를 맡은 어느 중령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우리나라도 군인을 대하는 사회인들의 자세가 바뀌길 희망한다. 군인들의 곤란한 처지를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거나 군인을 노동의 도구로 이용해먹는 사회 풍조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부디 우리 시대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겪었고,겪어야 할 '군인'이라는 신분을 '군바리'로 격하시키는 악습을 끊기를 희망한다.
이 밤 편안히 누워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의 아들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쁜 악습을 끊어내지 못하고, 더 좋은 군대문화를 물려주지 못한 것에 대해 선임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제2, 제3의 조석봉 일병이 눈물을삼켜야 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