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영국의 외교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E.H.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좀 더 정확하게 인용하자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즉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고 하였다. 아마 역사를 집필할 때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지난 역사를 취사선택하는 작가적 시점을 얘기하는 듯하다.
고상하고 거창하게 표현된 역사가의 정의는 접어 두고, 8월 9일, 또 다른 오늘의 작지만 위대했던 어떤 역사를 살펴보자.
아시다시피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은 일장기를 단 채로 시상대에 섰다. 대한의 심장이 뛰는데도 '기테이 손, 난 쇼류"로 불릴 수밖에 없어서 당당한 시상대에서도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던 두 남자...남승룡은 후일,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손기정의 올리브 나무 묘목이 무척이나 부러웠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그 불행한 청년들의 나라는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고, 고개 숙였던 청년은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단 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로 다시 세계에 우뚝 섰다.
'영원한 청년 손기정'의 얘기가 여기까지였다면 그저 한 인간의 인간승리를 그리는 작은 드라마로만 끝났을 것이다.
놀랍게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몬주익 언덕을 올라 태극기 선명한 마라토너가 1위로 골인하였다. 'Gold medal 황. 영. 조.'... 시상식이 끝나자 그는 관중석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백발의 노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백발의 노구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걸어주었습니다. 황영조는 나중에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오늘 아침에 문득, 손기정 선생님이 베를린을 제패했던 8월 9일이란 걸 깨닫고 꼭 금메달을 따서 목에 걸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우연한 흐름이 필연적인 만남으로 인해 한국 마라톤, 나아가 세계 마라톤의 역사는 전설과 같은 새로운 감동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냈다.
'역사'는 억지로 가공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우연한 흐름이 특정한 시점,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하게 만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