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는 지름길이 없다

by 김진경

피아니스트에게

“악보만 이해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손가락이 굳지않도록 같은 스케일을 반복하는 시간을

음악의 본질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단 한 음이 흔들리지 않기까지,

그 손은 이미 수천 번 지루함을 견뎌냈다.


수영선수도 마찬가지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이론만으로 기록을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물속에서 숨이 막히고,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몸으로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물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


축구선수는

공을 차지 않고

경기를 이해할 수 없고,

수학자는 문제를 풀지 않고

사고의 근육을 만들 수 없다.

틀릴 걸 알면서도 다시 계산을 적고,

이미 알고 있는 드릴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몸과 생각은

사용한 만큼만 정직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술 앞에서는 이 모든 상식이 쉽게 무너진다.


“비실기로도 미술 전공 되지 않나요?”

“그림, 굳이 그렇게 오래 그려야 하나요?”

제도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작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 있는 일이다.


그림은 머리로 이해하는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축적되는 언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판단하고,

생각으로 멈추는 이 과정은

설명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오래 그린다는 것은

잘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몸 안에 판단의 기준을 쌓는 일이다.


비실기로 시작한 사람과

오래 그려온 사람의 차이는

재능에서 갈리지 않는다.

막혔을 때 드러난다.

화면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디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오래 그려본 사람은 다시 앉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 길이 맞는지부터 묻는다.


그림을 오래 그린다는 건

사실 실패를 오래 견디는 일이다.

수없이 망치고,

지우고, 덮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을 통과하며

사람은 알게 된다.

예술은 재능으로 버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는 태도라는 것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결국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도 예술가의 자리에 설 수 없을까.

하지만 몸을 쓰는 모든 분야는

건너뛴 시간을

언젠가 반드시 다시 요구한다.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배신하지 않고,

수영선수는 물을 피해가지 않으며,

축구선수는 공을 속이지 않고,

수학자는 계산을 생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예술가는

그림을 건너뛰지 않는다.

그림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끝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술 전공이라 한다면

수천, 수만 장의 연습 없이

그 이름을 쉽게 쓰지 말았으면 한다.


피아노를 몇 번 두들겼다고

스스로를 피아니스트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대학학벌보다중요한건매일연습

#그림을매일건너뛴예술가는없다

#수십년연습한만큼성공하는길

#매일작업하고그림그리는이유


김진경에세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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