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 두기>
“선배님. 일을 추진하는 면에서는 다들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럼 다른 부분에서는 내가 부족하다고 하던?”
“네. 조금 안 좋게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얼마 전, 후배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후배는 제가 재직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회식 때 간혹 저에 대한 말이 나오나 봅니다.
이번에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니 대략 이렇더군요.
“퇴근을 일찍 한다.”
“친한 사람만 편애한다.”
“업무 스타일이 너무 까칠하다.”
“꼼꼼하지만 완벽을 추구하기에 후임들이 피곤하다.”
“좋고 싫음이 뚜렷하다.”
쓰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습니다.
타인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자면,
저녁 7시를 전후해서 퇴근하면 일찍 퇴근하는 편이 맞습니다.
팀원들 대부분 9시나 10시 전후로 퇴근했으니까요.
싫은 사람과는 유대 관계를 잘 맺지 못합니다.
이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요?
영업과 마케팅 일이 담당이었기에
수치적인 데이터를 많이 다뤘습니다.
따라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질타를 많이 한 편이었죠.
그런 면에서 까칠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는 인정합니다.
충분히 피곤하게 할 만한 소지가 있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을 가까이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이므로
나와 다르다고 해서 험담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저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네 덕택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섭섭한 말씀을.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게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 일인 것 같습니다.
친하다고 해서 한도 끝도 없이 가까워질 필요도 없고,
친하지 않다고 해서 저만치 먼 거리를 두고 밀쳐낼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그 공간이 부드러운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상처받고 상처 주기 쉬운 세상에 살면서
너무 가까우면 지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요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 The 한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