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한결 May 29. 2020

가난이 이별을 부추긴다

가난이 어두운 풍경만 안겨주진 않는다

가난이 이별을 부추긴다.


밤새 살림살이 부서지는 소리에 온 동네가 시끄럽다. 다음 날이면 누군가 동네를 떠나고 없다. 무슨 이유에서 고향을 버리고 하나둘 떠난 걸까? 가난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을 불러오고, 결국 고향마저 등지게 함을 훗날 알게 된다.


아버지께서 거나하게 취하신 날이면 어머니와 형제들은 긴장한다. 어디서 생겨난 화인지 분풀이 대상은 가족이고,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차가운 바깥에서 기다려야 한다. 집을 도망쳐 나와 어두운 담벼락 아래 형제들은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밤을 새운다. 하나님이 빨리 아버지를 잠들게 해주시길 빌면서. 그러는 동안 모진 인내의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 형제들은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무섭고, 술에 취하도록 만든 가난이 두렵다.


할아버지께서는 큰아버지를 제외하고 다른 형제, 즉 나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삼촌, 고모들에게 가난을 물려준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 결정은 내가 어린 시절 내도록 원망의 말을 했던 구실이 된다. 일 년 내도록 농사를 지어봐야 손에 든 돈은 고작 다섯 가족의 서너 달 생활비 정도. 그나마 끼니는 굶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쌀보다는 보리를 더 많이 섞어 먹은 것이 그때의 끼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고 보리가 나기 이른 정월의 대보름 달은 차가운 얼음처럼 긴 밤의 배고픔을 선물한다. 보리가 이삭을 내밀 무렵 가난은 극에 달한다. 종자로 남겨둔 볍씨마저도 끼니에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 정도니까.


언제쯤 내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나?


우리 집 명의, 다시 말해 아버지 명의로 땅은 없다. 결혼 전 모아둔 재산은 대가족의 생활비로 상당 부분 쓰고, 결혼 후 분가해서도 얼마간 그 과정은 되풀이된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시댁의 불합리한 경제 상황에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신다. 다만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줄까 노심초사하셨던 것만 빼고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소작농.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부. 소작농의 하루는 해가 뜨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동틀 무렵이 가장 어두운 법. 아버지는 늘 삽과 낫을 챙겨서 들일을 하러 나선다. 나락이 얼마나 여물은 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의 눈으로 봐야 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하시니. 어린 마음에 따라다니며 새벽이슬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알게 된다. 동쪽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붉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해를 보면서 새로운 날은 항상 희망의 밝은 빛만 이어지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가을 추수가 끝이 날 무렵, 타작이 끝난 쌀의 절반이 따로 주인을 찾아간다. 소달구지에 실은 수십 가마니의 쌀이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땅 주인에게 소작료로 바쳐지는 현실. 쌀은 반으로 나누고, 그 쌀을 얻기까지의 비용과 노력은 오롯이 소작농 부담. 아버지께서는 차마 이런 현실을 막내인 나와 작은형님에게 알려주지 않으신다. 큰형님의 설명을 듣고 비참한 소작농의 현실을 깨닫는다. 우리 가족이 마주한 가난의 원인. 설움에 겨워 눈물이 난다. 어려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죄책감과 먹는 입을 하나 더 늘리는 데 이바지한 내 존재의 서글픈 현실이 마음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난다.


가난이 어두운 풍경만 안겨주진 않는다.


임차 농업과 임차 농업인. 이를 두고 소작농이라 한다. 아버지는 많은 소작농 중의 한 명이고, 나는 그 한 명의 소작농에 딸린 식구. 누군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나면 남는 건 그저 병든 몸과 약간의 양식 걱정으로부터의 해방. 이것도 일 년 내도록 풍족한 양식이 아니라, 절반의 해방임을. 그 사이는 지천으로 널린 나물과 쌀을 대체할 옥수수, 조, 수수, 보리 그리고 구황 작물인 감자와 고구마의 도움 없이는 다섯 식구가 배고픔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쑥, 달래, 냉이가 나오는 봄이면 소쿠리를 들고 나가 부지런히 채운다. 어린 아들을 곁에 두고 나물을 캐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가난하지만 그 가난에도 행복한 풍경은 깃드는 법이다.


가난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배고파하지 않은 이는 이를 두고 뭐라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옛 조상들의 어긋난 참견 의식을 물려받은 후손 몇은 말이 많다. 책이든 영화든 제대로 읽고 보지 않은 사람이 편견의 시선으로 해코지를 하듯 내가 보낸 가난한 시절에 대해서는 누군가 뭐라 하지 말기를.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한 사람은 부지런해야 살아남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굳이 누군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가난해 본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밥그릇을 챙긴다.


가난은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상처다.


내 고향은 대구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 있다. 모교인 초등학교에서 십 리 길을 걸어야 나오는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라일락이 집 안팎을 향기롭게 적시고 장미가 탐스럽게 마당 한 곳을 장식하면 5월의 하늘은 어느새 여름을 닮아있다. 이때 발 빠른 농부의 손길에서 모판이 옮겨지고 새로운 수확을 향한 볍씨들의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누렇게 뜬 논은 금세 초록의 가지런한 모종들로 다시 태어난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고향 들녘을 찾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이 모종들이 쌀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많은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보내기 위해서. 그리하여 두 번 다시는 가난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 같이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평범하게는 살아갈 수 있도록 생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달라고 빌기 위해서.



Written By The 한결.

2020.05.29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산은 홀로 타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