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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Jun 13. 2020

글이 삶을 관통하면 몸살이 난다

글쓰기란 시간을 담는 과정

글이 삶을 관통하면 몸살이 난다.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을 거쳐 간 인물과 사건, 배경을 밑거름으로 글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글 안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녹아 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글 속에 녹기 마련이기에.


글을 쓰고 나면 아픈 사람들이 있다. 잊고 살다가, 어떤 계기로 드러나게 된 진실 앞에서 눈물과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 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동안 글 몸살을 앓았다. 내가 쓴 지진 같은 글이 내 삶을 관통했고, 지축이 흔들렸다. 서서히 여진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보름 넘어서야 겨우 백지와 마주한다.


밤새 벼락이 당산을 후려친 이후, 내 삶은 글쓰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막연히 일기로 써오던 글이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설 때부터 나는 조금씩 앓는다. 타인의 시선에 내 몸이 반응한다는 사실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데도 쓰고 또 써야 하루의 마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 테다.  


흔들려야 제대로 열매를 맺는다.


평생 자신의 명의로 된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시는 것이 소원이던 아버지, 그 곁에서 묵묵히 인내의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 가난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풍경이 잿빛 먹구름을 배경으로 볕 하나 들지 않는 암울한 과거만을 드러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억척같이 삶을 살아낸 이유가 결국 가난하지 않기 위해서임이 드러났으니까.


가난이 안겨준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해 내 몸이 아팠다는 사실. 글을 마무리하고 얼마간 몸서리치게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 내가 글 몸살을 앓고 있음을 인정한다. 5월 모내기가 끝나면 가녀린 모종들이 하나씩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많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에 이런 식의 몸살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사과 한 알도 비바람에 흔들려야 제대로 열매를 맺듯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가난과 관련한 글을 쓰며 오랜 시간 내 삶의 바탕이 되었던 뿌리와 마주하고, 풍경 속에 녹아있던 미처 꺼내지 못했던 내면의 감정선을 건드린 모양이다. 다른 이가 알게 되면 부끄러울 것이라 여겼던 일들. 겉으론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면서 속으론 지금까지도 감추려 했음을. 누군가에게 제대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고, 내 감정선이 모조리 노출되어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낫는다.


치러야 할 제값을 치르는 과정이다. 내가 쓴 글은 내 모습을 한 또 다른 나. 글자 위에 놓인 감정과 문장 속에 숨은 통증은 오롯이 내 몫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기듯 마음에 글을 새겨 하얀 백지 위에 단어의 조합으로 문장을 엮어내면 마침내 한편의 글이 된다. 삶이 된다. 이 순간 그간 잊고 살았던 나를 만나고 마침내 화해한다. 아프지만, 부끄럽지만 이것 또한 내 삶이었음을 마침내 깨닫는다.


물리적으로 누군가에게 맞으면 통증이 오래간다. 약도 발라야 하고 특정한 동작을 할 때마다 쑤시고 결린다. 글을 쓰고 나서 앓게 되는 몸살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감정선을 누군가 건드리면, 다름 아닌 자신이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긁고 도려낸다면 그 통증은 당연히 오래간다. 어쩌면 보름은 짧은 시간일지도. 시간이 흘러 다시 백지와 마주한다면 모든 게 다 마무리되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 이전보다 성장했음을 깨닫는다. 


내 삶의 모든 처음을 글로 말하고 싶다.


샤워하면서 시원스레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다가 느닷없이 벼락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 느낌을 받는다. 밤새 벼락이 당산을 후려친다, 는 문장은 이때 처음으로 태어난다. 어쩌면 잊고 지냈던, 잊고 싶었던 기억을 꺼내 한 공간에 담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든다. 오십 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마주한 인물, 사건, 배경을 하나씩 드러내면 그게 곧 지금의 내가 될 터.


고향이 마주하고 있는 현재 상황, 무분별한 축사 건립으로 인한 토양과 공기의 오염이 그 시작을 알린다. 명절 때마다 인상을 쓰면서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 하는 현실. 바뀌지 않을 미래란 없을 것이란 전제로 하나씩 드러내 보기로 한다. 나고 자란 곳이기에 좋았던 모습 이면에 놓인 어두운 면을 제대로 드러낸다면. 그렇게 해서 그때 그 시절의 아름다운 고향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기에.


글쓰기란 시간을 담는 과정이다.


세상의 모든 처음은 설렌다. 때론 두렵기도 하고. 명절이 되어야 새 옷과 새 신발이 생기는 산골 아이의 선한 눈망울. 처음으로 마주하는 컬러 TV, 전축, 카세트, 미니카세트 등. 내 삶을 관통해 간 모든 설렘을 표현하고자 한다. 두렵지만 처음 맛보는 거절과 이별의 순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운명의 시간도 녹여낼 예정이다. 서늘했던 몸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과 주검을 마주했던 경험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금 글 몸살을 앓게 되더라도, 나는 쓰고 또 쓸 것이다. 글이 삶을 관통하면 몸살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기꺼이 지난 시절의 나와 마주하리라.



Written By The 한결.

2020.06.13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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