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장에도 통증이 깃든다.
새순이 돋고 볕이 조금 따스해지면 곧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제비가 찾아 든다. 처마에 놓인 빈 둥지가 제비 우짖는 소리로 가득 차면 농부의 손길도 바빠진다. 만물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새로운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된다. 농부는 모판도 새로 가꾸고 논 여기저기 손을 보며 풍년을 기원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내아이에게 흔들리는 치아는 두려움으로 위태롭다. 처음은 운이 좋았는지 군것질하다 우연히 포장지에 걸려 빠졌는데 두 번째부터 제대로 통증을 가르쳐준다. 가만히 두자니 아프고 불편한데 억지로 빼려고 하면 몸이 얼어붙는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해가 바뀌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나무의 나이테도 이런 과정을 겪음을. 성장에는 어느 정도 통증이 깃든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흔들릴 때마다 또 한 번 성장하려나 짐작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조용히 실 한 가닥을 천천히 손가락에 말고 계신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지엄한 말씀 앞에 가지런히 두 무릎에 손을 올리고 연신 눈치만 살핀다. 입을 크게 벌리고 새끼 제비처럼 고개를 하늘로 젖히고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막연할 뿐 어떤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다. 탁, 하면서 나의 이마와 아버지의 손바닥이 마찰음을 일으키면 무언가 쑥, 하고 빠져나간다. 빈자리에 생겨나는 생경한 느낌. 그렇게 처음으로 성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 하나 뽑았을 뿐인데 몸이 노곤해진다. 그러면서 대견해한다. 무엇보다도 두려움과 마주한 나의 마음가짐이 그렇다. 참고 견디느냐 그렇지 않으면 꽁무니 빠지게 방문을 열고 도망갈 것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가는지. 눈 딱 감고 견디면 이후부터는 새로 자라나는 치아가 그 보상을 독특히 할 텐데, 모르니까 더 두렵다.
선택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형상과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고작 이 하나 뽑는 것과 같은 두려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누군가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고심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런데도 단 하나의 선택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어떤 이유로 삶에 흔들리면 이를 뽑던 그때를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가 흔들릴 때마다 또 한 번 성장하려나 짐작한다.
삶이 언제 호락호락한 적이 있던가 싶다.
어제라는 과거는 되돌릴 수 없기에 언제나 아쉬움을 안겨주는 존재가 된다. 기억 속에 머물며 미처 그리하지 못했음을 애태우기도 한다. 이번에는 더 잘해야지 하면서 결국 현재에 맞닥뜨린 기회를 또다시 놓치는 안타까움이란. 이로 인해 다가올 내일의 미래마저 위태롭게 펼쳐 나가는 때가 있다. 분명히 더 잘 해낼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명심하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삶에서 무언가 그리 호락호락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억울할 일도 없다는 것을.
신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한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인간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제 막 한숨 돌리고 살만하니까 또 다른 불행이 입을 벌리고 앞길을 막아서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이 하나 빠지는 것은 일도 아니란 듯이.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수명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때가 되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무언가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다. 살아오면서 한번은 맞닥뜨리는 운명이다. 내 소중한 가족이 내 생에서 멀어지는 아픔이란 말로써 표현하기 어렵다. 내 삶의 전부였을, 내 생의 근원이었던,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누군가 사라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이가 느닷없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갑작스럽게 빠지듯이, 그렇게 온다.
미리 알고 있었다 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손 한 번 더 잡고, 눈 한 번 더 마주치는 것 외에 대신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침묵으로 떠나감을 배웅하며 깊은 슬픔으로 빠져든다. 한 존재의 부재예고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할 존재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살아 있음이 감사한 데 왜 이토록 미안하고 아쉬울까. 부재한 순간에 누군가의 삶의 몫은 끝났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뿐인데도 그렇다.
날은 화창하고 좋은데, 바람은 더할 바 없이 따스하고 포근한데 시린 가슴엔 찬바람이 쌩, 하고 드나든다. 나름대로 단련이 되어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그 공백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에 드나듦이 쉬울 리가 없듯이 떠나보냄도 어렵다. 빈자리는 언제든 표가 나는 법이고 언젠가 서서히 그리움으로 몸서리칠 테니까. 이 하나 빠진 자리도 새로운 이가 자라는 동안 허전함에 이리저리 혀를 굴리듯이 사람이 스친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채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부재가 존재를 낳고 존재가 또 다른 부재의 씨앗이 된다. 그렇게 반복된 삶 속에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장에 통증이 깃드는 법을 몸소 알아가면서 이어져야 한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07.04 대한민국 대구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