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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Aug 26. 2020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생겨난다

온 세상이 깨끗해졌으면 싶다.

2020년, 세계가 역병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 어느 해보다 아프게 피었던 봄의 전령, 꽃은 졌으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한숨 돌리려나 싶었던 것이 장마를 기점으로 더욱 기승을 부린다. 국가의 방역체계를 무너트리는 문외한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온 국민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시절이 아주 수상하다. 장마 후 불볕더위마저 기승을 부리니 참기가 어렵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가뭄을 해갈하듯 비가 내려 바이러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또 다른 고통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수많은 수재민의 발생으로 눈물로 지새우는 분들이 많다. 특히 어렵게 키워낸 농작물과 생의 터전인 논밭이 물에 잠기거나 토사에 묻혀 지력을 잃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죄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애절한 마음과 안간힘을 써서라도 일어서 보겠다는 마음을 보면서 터질 듯이 죄어오는 통증이 느껴진다.


농사에 있어 비는 절대적인 요소다. 모든 농작물은 물을 떠나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가뭄 져 논바닥이 갈라진 모습을 보는 농부의 애타는 마음은 어느 것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내 가난한 어린 시절의 두려운 장면 중 하나는 갈라진 논바닥에서 한숨을 쉬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소작한 논밭에 심어놓은 작물이 말라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농부에게 하늘이 내리는 시련 가운데 가장 큰 시련일지도.


심한 가뭄은 농부의 마음을 말린다.


새벽 나절, 누구나 할 것 없이 논밭으로 나가서 하는 일은 자신의 논밭에 물길을 내는 일이다. 이 물길은 마을마다 보유한 저수지로부터 비롯된다. 농촌은 농업이 주된 생의 기반이고 이를 터전으로 모인 사람들의 근원지인 만큼 농사를 위한 저수지는 필수적인 요소다. 물을 가둬두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는 자연재해 예방책이기도 하다. 다행히 극심한 가뭄이 아니라면 저수지의 물을 조금씩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그럭저럭 피해를 헤쳐나간다. 하지만 저수지의 물마저 바닥이 난 상황이 된다면 농부의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게 마련이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은 작은 수로를 따라서 각자의 논으로 향한다. 마음씨 고약한 농부는 이런 순리를 거스른다. 남보다 자기가 우선이니 다른 이의 논으로 향하는 물줄기를 비틀어 자기 논으로 끌어오는 무례함을 연발한다. 혼자만 살겠다는 도둑놈 심보다. 계단식의 다랑논은 위가 물이 차지 않으면 아래도 차지 않는다. 이를 잘 아는 농부들인지라 누가 누구의 물을 끌어다 썼는지 훤히 안다. 심한 가뭄은 농부의 마음을 말린다. 이래저래 새벽 나절부터 목소리가 커진다. 심하면 서로가 멱살을 부여잡는 일도 생기니 농부의 심장은 적당한 물기로 항상 촉촉했으면 싶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생겨난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은 것은 어느 순간에 내려준 비 덕분이다. 가뭄으로 한숨이 짙었던 아버지의 등 너머로 피어나던 담배 연기, 주름진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한줄기 가뭄의 젖줄이 되어 힘겨운 고개를 넘은 게 몇 해였는지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어찌 되었든 가뭄이 심해 흉년이 된 해는 겪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산골 농촌 마을에서 산다는 것, 작고 꼬불꼬불한 다랑논에서 소중한 쌀을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 어린 시절은 그 쌀로 피와 살이 채워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신기한 것은 생명을 가진 작물들의 생의 의지에 관한 일이다. 가뭄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비가 오고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녹색의 생명 빛을 한껏 품으며 자라나니 말이다. 노랗게 비틀어져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어느 정도의 생명력을 품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다. 그 사실을 모르니 줄기가 말랐다고 함부로 뽑아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의 의미를 배워나가기를 기원한다.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이고 생의 근원이다.


역병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에 무역이 단절되고 농산물 이동이 제한된다.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해져 곡물에 대한 수출에 제한을 두는 나라까지 생겨나고 이로 인해 심하면 식량 주권을 빼앗긴 나라도 생겨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료 작물과 밀을 비롯한 가공식품의 원료가 되는 곡물이 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쌀을 수출 제한 품목으로 지정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일부 국가들은 쌀 부족으로 국민이 고통스러운 상황에 내몰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아직 정부에서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있으랴마는 농사는 특히 하늘과의 동업이 절대적이라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첨단 스마트 농법으로 모든 재해를 사전에 방비하겠다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토대도 결국 강력한 태풍이나 극심한 가뭄 앞에서는 맥을 못 추린다. 스마트 이전에 그 근본이 되는 재앙으로부터 예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 생명의 토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하늘과의 동업인 농업은 등한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젖줄이고 생의 기원이며 당신을 살려내는 어머니의 땅이다. 역병이 물러나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많아지기를 소망해본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08.26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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