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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호 Jul 14. 2020

오래된 빙수는 LP와 같다.

코로나 19 이후 집에 화분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얼마 전엔 먹거리 준비를 위해 들리는 옥천 로컬푸드 매장에서 파파야 모종을 하나 샀다. 100년간 한반도 평균기온이 3도 이상 높아졌다고 하니, 지척에 파파야가 등장하는 현실이 큰 무리도 아니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더워지고 조금씩 난폭해지고 있다. 

* 사진: 성심당은 포장빙수를 1985년 전국 최초로 개발했다. 전설의 팥빙수를 일찍이 배달로 맛볼 수 있었다.


“팥빙수나 하나 먹자, 더운데.” “내가 쏠게.” 힘이 세진 한여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물론, 저녁에야 만원에 네 캔 하는 편맥이 대세지만, 생각도 마음도 나른한 오후엔 무조건 빙수다. 회식을 안 하는 MZ세대도 빙수 휘게(Hygge)에는 큰 반대가 없을 듯하다. “좋죠 ~” 이렇게 빙수는 같이 먹어야 맛있다. 빙수가 배달되어 오는 동안 나는 빙수집에서 물레 같은 손잡이가 돌아가며 만드는 어름을 상상해본다. 벌써 시원해진다. 


“뭐든 늘 찾던 것만 원하는군”..오래된 나의 빙수는 풍요롭다. 팥, 우유, 연유, 딸기, 떡도 있지만, 그 안엔 내가 청년시절에 동경했던 자유와 멋짐의 홍콩 이야기, 영화 ‘중경삼림’의 ‘California Dreaming’이 있기 때문이다. 전설의 그룹 이글스가 부르는 ‘Hotel California’도 있고, 청년 요요마의 ‘Obrigado Brazil’도 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오래된 나의 빙수는 LP와 같다.


곧 초복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마전선이 초복날엔 소강상태라는 날씨예보다. AI가 장착된 에어컨이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다 있지만, 무더위 때 기분전환은 빙수가 갑이다. “팥빙수나 하나 먹자, 초복인데” ‘사각사각’ ‘사각사각’..빙수가 오는 동안 나의 전설들이 또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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