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내 손으로 내 목을 조른다는 것

by 다온

자살은 내가 심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전부터 마음이 가는 부분이었다.

글을 구상하기 시작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죽음이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일까.

아무도 죽어본 적이 없기에 두려움은 아마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누구나 가능하다면 미루고 싶은 것이 죽음이건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더이상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을 때.

우리는 죽고 싶다. 가 아니라 살기 싫다. 는 마음으로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죽음 뿐이므로 우리는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의 손을 잡는다.


그렇다면 왜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을까.

친구가 어느 날 이런 글을 올렸다.

'자살은 본인이 너무 힘들 때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고 일이 개선될 여지가 없을 때

본인의 목숨으로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선택인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나약하고 바보같다고 말한다.

죽고 나면 변하는 것은 없다고. 사람들은 금방 그 죽음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고.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서 삶을 바꾸라고 말한다. 살아야 다음도 있다고.


우리가 말하는 삶의 희망이란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단순히 하루를 더 버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저 내게 내려진 형벌이 하루 연장된 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살을 권장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뉴스에서만 보던, 나와는 전혀 관련 없을 것만 같던 자살이 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었다.

우리가 살면서 농담으로라도 자살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쉽게 말하는 일이지만

그런 일을 접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학교에서 자살 예방 교육을 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자살하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

누군가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손을 내밀어 준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 교육을 받을 당시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건 바보라고 생각했다.

죽을 만큼 힘들어 하는 데 옆에서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성인이 되고 지인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충격적이었다.

아.무.도. 그 아이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힘들어했을 것이다. 울기도 했을 것이고, 점점 기운을 잃어갔을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의 안색을 상상해보라. 모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알아채지 못할까?

바로 우리는 남의 힘듦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것 같지만 누구나 그 정도는 힘들어 하며 산다고 지나친다.

우리 스스로도 습관적으로 죽음을 내뱉고 삶에 대한 한탄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힘듦을 얘기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간다.

그것이 푸념인지 신호인지 구별하지 못할 만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희망은 사회의 몫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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