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나는 왜 지치는가.

by 다온

나는 왜 지치는가.


가끔 아무 목적 없이 켜진 노트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 버린 채.

가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한 없이 무거워 한 발을 내딛는게 힘겨울 때가 있다.

분명 그렇게 가고 싶던 집이었는데.


이렇게 우리는 때로 일상의 끈을 놓고 한 없이 가라앉는 시기가 있다.

나는 이 순간을 '소진(Burn Out)'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배터리가 다 닳아버려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순간.

그게 신체적 소진일 수도, 심리적 소진일 수도 있지만 소진의 순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소진'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꼭 '직무'로서의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사람에 치여 메신저를 읽는 것도 내키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집을 나서는 것 조차 내키지 않아 몇날 며칠을 집에 박혀 있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치는가.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내 의지가 아니라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득 떠오른 보고싶은 사람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행복하지만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 '일'은 지치기 마련이다.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을 보는 것은 행복이지만

내가 무언가 해줘야하는 이에게 빈 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지치기 마련이다.


어느날 그렇게 붙들고 살던 핸드폰이 귀찮게 느껴진다면,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던 길이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나에게 물어보자.

"너 지금 일을 하고 있는거니?"


취미가 일이되면 하기 싫어진다는 말이 있다.

밤을 새워서 할 정도로 좋아하던 일도 해야하는 일이 되면 싫어지기 마련인데.

어떤 것이 늘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가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지치는지 아는 것과 이유없이 지치는 것은 다르다.

적어도 내가 지금 지쳤구나. 이것 때문에 지쳤구나를 알면

지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고 다독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쉬어도 된다고.' 혹은 '조금만 버텨보자고.'


지치면 안된다고 채찍질 하지 말자.

지칠 수 있다. 그러니 지쳐도 된다.


"지금 여러분은 지쳐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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