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보다 좋다. 춤을 추거나 웃을 때보다 멋있다고 생각한다. 몸 전체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곳이 없다. 눈빛은 달리는 동안 내내 살아있다. 반드시 도착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팔꿈치와 무릎이 예쁜 호를 그리기 위해서는 산소가 벅차도록 필요한데, 항상 모자람 없어서 좋다. 이처럼 모자람 없고 자신에게 확신하는 순간은 잘 없다.
내 달리는 모습을 나만 좋아한 것은 다행히도 아니어서, 중고등학교 체육대회마다 늘 계주선수였다. 나는 좋은 2번 주자나 3번 주자였다고 자부한다. 말처럼 달렸으니까. 나는 조용하고 우직하게 달릴 줄 안다. 첫 번째나 마지막은 주로 치타 같은 애들이 달리는 번호고, 2번이나 3번은 기복 없이 달리는 애들의 몫이다. 흐름이 끊이지 않게 전달하고 마지막 치타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달릴 수 있도록 조성하는 번호가 2번과 3번이다. 이들은 항상 키가 컸던 것도 같다. 존재감으로 앞번호와 뒷번호 그리고 같이 뛰는 선수를 압박하는 것도, 닿지 않는 몸싸움도 그들의 역할이지 않았나 싶다. 이런 면에서도 나는 적절한 2번, 혹은 3번이었다. 그냥 내가 달리는 모습이 멋있단 소리다.
미경이도 달리기를 좋아한다. 미경이는 학교 대표 육상선수로 도 대회까지 나가봤다. 대회 연습을 위해 달릴 때면 학교 남학생들이 우르르 나와서 구경할 정도로 자신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생각한다. 젊다 못해 어린 미경이라면 달릴 때 속도에서도, 모습에서도 틀림없이 탁월했을 것이다. 미경이는 내가 매년 계주로 나간다고 하면 퍽 좋아했는데 아마 그때마다 달리던 자신을 회상하지 않았을까. 미경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광열이를 만나지 않고 달리기를 더 오래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1년에 딱 하루, 미경이보다 한참 덜 탁월한 나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있다. 체육대회 날이다. 각 반에서 제일 잘 뛰는 애들이 방송에 따라 운동장 중앙으로 집합한다. 흰 선으로 구별된 안과 밖. 모두의 시선은 안으로 집중돼있고 그곳에 내가 있다. 다닥다닥 따라붙는 시선에 나는 미묘한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체육대회 2주 전에 옆 반 치타랑 통화했다. 얘는 학교에서 가장 빠른 남자애였다. 치타는 이어달리기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현기증이 난다고 유난을 떨었는데, 나도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얘도 그 미묘한 우월감을 아는 애였다. 그리고 얘는 나보다 힘도 세고 무거워서 운동장에 발 도장을 꾹꾹 찍으면서 달렸다. 얘가 발 앞부분으로 찍고 지나간 자리에 내 앞꿈치를 대보면 한참 남았는데 그러면 콱 져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얠 좀 좋아했다.
얘는 홀수 반이었고 나는 짝수 반이었어 예선에서는 겨루지 않으니까 각자 뛸 때 잘 봐주기로 했다. 서로의 건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완벽히 몰입해서 서로를 얼마나 차갑게 무시하고 지나치는지, 서로의 정신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약속이었다. 얘는 나더러 다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놓고 당일에 옆 반 치타는 예선에서 무릎과 팔을 깨 먹었다. 몸이 의욕을 따라기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걔는 좀 울었는데 뭐가 제일 아팠을까? 단박에 예선에서 탈락한 것, 아니면 상처에 모래알과 흙먼지가 들어 간 것, 아니면 모래알을 긁어내는 핀셋, 아니면 조금 기쁜 마음으로 동정하는 존재, 아니면 보여주고 싶었으나 보여주지 못한 자의 마음. 돌아서지 못한 형편없는 마음, 져버린 마음. 그날 밤에 메시지가 왔다.
- 너 되게 잘 뛰더라.
내가 여기에 대답을 했던가? 안 했을 것이다. 그야 미경이 딸이니까. 너무 아름답게 달린 탓에 광열이한테 잡혀버린.
나는 사실 미경이가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미경이는 반 백 살이 넘어서는 뛰다가 넘어져서 입원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 번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한 번은 지나가는 버스를 잡기 위해 뛰다가. 넘어진 것뿐이었는데 두 번 다 길게 입원했다. 뭐가 제일 아팠을까? 미경이는 물어볼 때마다 괜찮다고만 했는데 아주 속상해 보였다. 더는 마음의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몸에 대해. 그 뒤로 미경이는 어디에서도 달리지 않는다.
대신 미경이가 달린 직후는 본 적 있다. 미경이가 넘어지기 전, 내가 혼자서는 슈퍼도 못 갔던 시절에 교회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미경이는 50m 달리기에 출전했다. 초등학생이던 집사님 아들이 슈퍼에 데려가 주겠다고 해서 다녀 오느라 미경이가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고작 50m 달린 걸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상쾌하게 빛나는 얼굴로, 봤냐고 물어보길래 못 봤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말했다.
- 엄마 너 보라고 뛰었는데!
그 얼굴이 햇살 같아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달리는 미경이는 어떤 모습일까. 치타 같을까, 말 같을까. 딸을 의식하며 가차 없이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치타도 아니고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미경이었을 것이다.
2019.09.21.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