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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원 Sep 27. 2019

개구리


 나는 개구리를 무서워한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무서워한다. 사진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무서워하는데 나약하기 그지없다고 자주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과학 교과서에 개구리가 자주 등장했었다. 그래서 교과서를 선생님 몰래 자주 찢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개구리를 해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당시 호기심이 맹랑한 중학생이어서 뱃속이 궁금했으므로 무서워하는 마음을 참아보기로 했었다. 그 다짐은 개구리가 은색 쟁반에 놓임과 동시에 함락당했다. 매스를 든 쪽은 나고 배를 내주는 쪽은 개구리였으나 내가 개구리한테서 도망쳤다. 나는 그날의 참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문과를 선택하니 개구리를 만날 일이 잘 없었다. 대학도 인문계열로 진학했기 때문에 평온한 non-개구리 일상은 꽤 길게 이어졌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개구리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는 자주 무시당하는데, 그럴 때마다 개구리에 대한 혐오는  커진다. ‘개구리가 뭐가 무서워, 개구리가   무서워하겠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없다. 개구리가 나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것을 나도 안다. 나도 아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거다. 그걸 남의 말로 들으면 자존심이  콱콱. 반박할 수도 없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개구리가 제발 나를 무서워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없게 해달라고 그다지 믿지 않는 그에게 빌고는 한다.


 어느 날, 친구가 학교 공원 호수에서 개구리를 봤다고 했다. 개구리는 원래 있던 주차장을 밀어 엎고, 가짜인지 진짜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 잔디를 깐 그곳 중앙에 나타났다. 공원이 만들어지는 동안 노동자와 학교가 속물적인 문제로 대립해 한 학기 동안 사막 같던 그곳 중앙에 나타났다. 나는 이날 힘든 시험을 치느라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다. 평소보다 둔감하면서 예민했던 나는 한 박자 늦게 알아듣고 잠시 멍했다가 속사포처럼 욕했다. 친구는 내가 하는 욕을 듣고 왜 이렇게 화가 났냐고 하면서 깔깔 웃었다. 사실은 개구리가 무섭다고 고백하니까 친구는 더 크게 웃으면서 역시 개구리가 널 더 무서워하겠다고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평소보다 둔감하면서 예민했기 때문이다. 걔는 내 눈물을 보고 잠시 당황하다가 진짜 무서워하는구나 하면서 내 손을 꾹 잡았다가 놨다.


 집에 갔다가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희연이한테 학교에 개구리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도심 속에 웬 개구리냐고, 이 앞에 바로 지하철역이 있는데 우체국이 있고 은행이 있는데 개구리가 무슨 일로 나타난 거냐고 투정 부렸다. 그러자 희연이는 우리 학교는 산을 깎아 만들었으니까 원래 개구리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도심 속 개구리한테 살짝 미안해했다. 그리고 희연이는 말없이 공원을 가로지르는 가까운 길 대신 공원을 피해 가는 먼 길을 같이 걸어줬다.


 내가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찾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짓궂은 집안 어른들이 문제였다. 가족들은 한참을 늦게 태어났으면서 영악하게 구는 나를 귀여워하며 곧잘 데리고 놀아줬었다. 꽤 다양한 장난감으로 놀아줬던 것 같은데, 중에 누르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눈, 코, 입이 튀어나오는 장난감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엔 햄버거 모양뿐이었는데 개구리 모양도 있었나 보다. 앉혀놓고 개구리 모양 장난감을 꾹 누르면 나는 뒤로 휙 넘어가서 엉엉 울었다고 했다. 개구리 장난감에만 엉엉 울었다고 했다. 고약한 어른들은 그게 그렇게 귀여울 수 없어서 자주 그랬다고 했다. 미안하단 말을 곁들이며 내 볼을 한 입 깨무는 시늉을 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낯간지러워서 괜히 좋으면서 안 좋은 척 짜증을 냈다가 진심을 들켰다. 결국 내가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것은 그 시절 지나가 지용이가 혜빈이가 은성이가 나를 많이 사랑한 증거인 것이다. 미경이, 미희, 미영이, 미란이가 서로 닮은 얼굴로 나를 사랑한 증거. 그들의 남편들도 나를 많이. 그들의 부모님도 나를 많이.


 그러니까 내가 개구리를 무서워한다고 고백하거든 이미 알고 있더라도 새삼스럽게 나를 안아주길 바란다. 아니면 손을 꾹 잡아주던가 아니면 말없이 먼 길을 같이 걸어주길 바란다. 내가 이만큼이나 나약한 데가 있다고 얕게 속삭이는 말이니까. 내가 이만큼이나 깊게 사랑받았었다는 말이니까.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안심시켜주길 바란다.


2019.07.21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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