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뉴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32분경 입사 3개월 차 노동자 24살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2017년 11월에는 제주의 생수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군이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습니다. 2016년 5월 구의역 9-4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21살 청년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어 사망했고, 그 해 9월에는 열차 지연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채 선로에서 야간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 두 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지난 11월 21일 경향신문 1면엔 2018년 1월부터 올 9월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1200명 노동자에 대한 기록이 실렸습니다. 떨어짐, 끼임, 깔림, 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 사망의 원인이 무감하게 반복되며 나열되었습니다.
한국은 매년 2000명 가량의 노동자가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망률 1위 국가입니다. 죽음은 2000명이란 숫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 자녀, 형제들로 이어져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이들의 고통에 다시 맞닿아 있습니다. 끼이고 깔리고 압착되고 떨어져 죽는 죽음이, 그로 인한 고통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셈입니다.
2000명이란 각 개별 존재와 그들의 존재가 맞닿아 있는 더 많은 이들의 고통에만도 숨이 조여 오는데 의역학자 김승섭 교수는 산업재해로 다치는 노동자 숫자는 최소 하루 1100명, 한해 40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공식 통계보다 약 10배가 많은 이런 추정은 산재처리가 되지 않은 더 많은 사고와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훈 작가는 이 죽음들에 대해 “이것은 킬링필드다. 제도화된 양육강식이 아니라면 이렇게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20세기 기술의 진보는 역병으로 인한 무수한 죽음을 막았으나, 21세기 기술의 진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 기술혁명,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세계를 열고 있지만 그 안에 김용균들을 위한 기술은 없습니다.
달려오는 열차를 멈출 수 있는 인공지능은 없었고, 압착기에 낀 몸을 인식하고 작동을 멈추는 기계는 없었습니다. 기계를 만들며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을 막아내는 기술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계, 홀로 움직이는 자동차, 좀 더 빠른 정보통신망이 아니라 불 꺼진 선로에서, 인간을 압착하는 기계 앞에서, 숱한 재난의 현장에서 사람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의 진보 앞에서 기술이 무엇을 향하도록 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언표 앞에서 학교는, 지역은, 국가는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훈련하는 학원이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지향하도록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논의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힘을 기르는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혁신은 기껏 역량이란 천박한 자본의 언어에, 융합이란 현란한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음지 곳곳에 배어있는 고통과 슬픔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람의 자리가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갉아 넣어 돌아가는 세계의 과학과 기술은 혁명이 아니라 공허일 뿐입니다.
저작권자 © 안산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