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수요광장
유아교육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칭한 개념으로 영유아의 발달 특성상 교육과 돌봄은 구분하여 논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에서의 교육은 '돌봄', 유치원에서의 교육은 '교육'으로 기관의 성격을 이분화했다. 작년부터 재점화된 유보통합 논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이원화된 체제를 통합하자는 것으로, 여기엔 교육과 돌봄으로 분리된 유아교육을 다시 통합하자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유아교육에서 교육과 돌봄을 분리하여 마치 서로 다른 것처럼 표현하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돌봄'이란 용어는 학계에선 1992년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간호학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며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사회학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돌봄 노동'이란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간호학과 사회복지학의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의 유아교육은 보육으로 호명되었기에 보육학 분야에서도 2000년대를 관통하며 가정에서의 양육지원, 여성의 일-가족 양립 등에서 '돌봄' 및 '돌봄노동' 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그럼에도 아직 '돌봄'은 기관 보육(어린이집) 분야에서 교육과 대치되는 개념은 아니었다.
영유아교육 돌봄·교육 구획하는건
이슈화 이익 얻는 정치적 작용 결과
'돌봄≠교육'이란 공식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정형화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초등학교의 방과후 돌봄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이로인해 초등교사 업무 중 상당수에 돌봄관리, 노무관리, 민원대응 등의 돌봄 업무가 추가되었다. 이에 교원단체는 돌봄을 지자체로 이관할 것을 주장하며 전략적으로 교육과 돌봄을 분리했다. "지금까지 보육업무를 감내, 희생해 온 교사들에게 '보육도 교육'이라는 궤변으로 당연시 떠넘기는 일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조성철 교총 대변인의 말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분위기는 공립 유치원으로도 확산되어 유아교육에서도 교육과 돌봄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로 인한 돌봄 비상사태 속에서 돌봄전담사와 교원단체의 신경전이 고조되며 교육과 돌봄의 대치 구도가 크게 이슈화됐고 순식간에 유아교육 안에서도 돌봄과 교육이 분리된 것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0~5세에 해당하는 영유아는 발달 특성상 돌봄과 교육을 분리하여 접근할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토대인 신뢰와 불신, 자율과 수치, 주도와 죄책감은 생후 5년 안에 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돼 차후 양육자를 넘어 세계와 소통하는 근본이 된다. 그러니 영유아교육은 단순히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는 행위를 서비스하거나 노동하는 부모를 대신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내는 서비스로서의 돌봄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영유아교육을 돌봄과 교육으로 구획하는 행위는 철저히 성인의 관점인 셈이고 이러한 이슈를 놓치지 않고 박제화한 것은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의 정치적 선택이 작용한 결과다.
부모·여성·노동자 위한 서비스 앞서
영유아가 행복하고 건강한 삶 위한
학교로 접근하는 방식이 우선이다
작년 육아정책연구소에서 진행한 5차례의 유아교육 정책토론회는 교육부로의 유보통합을 이슈화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 모두 유보통합을 공약으로 내걸며 유아교육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교육부로의 유보통합이 드디어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 돌봄 서비스로서의 보육을 강조하는 보건복지부로의 통합 TF를 준비하고 있다거나 유보통합 교육부 정책 과제가 사회복지학 쪽에 치우친 인선으로 준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과 의심은 유아교육을 또 다시 영유아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돌봄 서비스 정책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영유아교육은 부모와 여성과 노동자를 위한 서비스로 접근할 필요도 있으나, 그보다 앞서 영유아 자신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학교로 접근되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부로의 유보통합은 발언할 수 없고 투표할 수 없으나 건강한 성장을 할 권리가 있는 영유아를 위한 최소한의 보루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