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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하 May 18. 2023

인공지능, 기본소득, 저출생

경인일보 수요광장 


학생이 자퇴를 했다. 프로젝트 과제의 팀장을 맡고 수업 때마다 눈에 띄게 집중하는 모습이 기대됐던 학생이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물리적 독립, 이로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이유였다. 학생이 이야기하는 부모와의 갈등과 물리적 독립을 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상황, 그로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모두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부모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면 더더욱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격증 등을 취득해 안정적 직장을 얻는 것이 필요치 않겠냐는 상투적 조언은 그의 당장의 상황과 밥벌이 앞에서 무용했다.


학기 초 드물지 않게 학생들은 자퇴하거나 휴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가정상황이나 경제적 어려움이 이유였다. 선생의 조언은 한 두 학기를 늦출지언정 학생들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으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결정이 번복되는 경우는 없었다. 안타깝거나 어찌할지 모르던 마음도 해가 갈수록 옅어졌다. 지도교수로 할 수 있는 딱 그만큼 안타까워했고 딱 그만큼 해야 할 말들을 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며 학생들은 떠났다. 


노동자 대신한 로봇에 대한 로봇세
정보 기댄 거대 플랫폼 기업 구글세
상위1% 부유세 등 더이상 상상 안돼


마음이 훅 꺼진 건 '공단'이란 구체적 장소성 때문이었다. 상투적으로 한 질문에 학생은 "○○공단에서 일을 해 돈을 벌 것"이란 구체적 답을 했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한 후 복학하겠다거나, 모아놓은 등록금을 생계비로 써야 해 다시 재휴학한다는 말들에는 그러니까 이미 무뎌졌던 것이다. 복잡한 가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공단'에서 일을 해 돈을 모았다거나, 당장은 돈이 급하니 '야간반'이나 '잔업'을 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는 부족한 잠을 자서 또래와는 어찌 친구가 되는지 모르지만 대신 '조장 아줌마 아저씨들'과는 금세 친구가 된다며 언급한 구체적 단어들이 고단했다. 어느 공간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의미는 지속되겠으나 청년이 하고 싶은 일보다 돈을 걱정하고 밥법이를 생의 가장 앞에 놓아야 하는 일상이 지나치게 명징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줄폐원하는 상황에서도 한달 기본이 100만원, 많게는 200만원, 300만원도 한다는 유아대상 영어학원, 소위 영어유치원은 4년만에 44%가 늘어 지난해 811개로 증가됐고 지금도 확장 추세다. 학교폭력의 명백한 가해자임에도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다양한 고등학생 특례 활동으로 인기 학과에 가산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정치인이나 유명인 자녀에 대한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세계 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상위 1%는 한국 전체 자산의 25.4%, 상위 10%는 58.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는 한국 전체 자산의 5.6%로 불과하다는데 '그들이' 선 땅은 어디고 '그'가 선 땅은 어디쯤인가.

청년들 여전히 '밥벌이' 최우선 선택
저출생 극복아닌 문명으로 적응해야

2022년 합계출생률은 0.78명이었고, 그가 태어난 2004년의 출생률은 1.16명이었다. 저출생은 노동력 부족과 국가 기반을 유지할 세수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고 각종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를 독립사업자로 변모시키며 이익도 위험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대는 새로운 부의 가능성보다 부의 세습과 편중이 더욱 쉽다. 로봇으로 대체되는 노동자와 불안정한 노동의 대가로 거둬들이는 세수로는 더 이상 국가를 지탱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노동자를 대신한 로봇에 대한 로봇세,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창출해 내는 정보와 노동에 기댄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구글세, 소비사회에서 존재 자체로 소비자가 되는 개인들에 기대어 한국 전체 자산의 25.4%를 축적한 상위 1%에 대한 부유세 등은 더 이상 상상이나 이상으로만 치부될 순 없다. 그렇게 거두어들인 세수 안에서 지속적인 소비력을 창출해 낼 기본소득과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청년수당 등의 기초자본이 마지막 한 명까지도 살아내게 하는 저출생 시대의 해법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출생률 1.16명 시대에 태어나 저출생이 이미 문제인 사회에서 성장한 청년은 여전히 밥벌이를 최우선 하는 선택을 했다. 출생률 0.78명의 시대에 태어난 이들이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의 평평한 토대 위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저출생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문명으로 적응해야 할 새로운 도전이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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