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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May 22. 2018

'지하철'을 보는 시선

태어나 서울 지하철을 처음 타본 건 초등학생 때였다. 오빠가 서울에 살아서  방학이면 가끔씩 놀러 오곤 했다. 지하철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서 무섭다'였다.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긴장됐다.


그날은 올케언니와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서 있었고 올케 언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엉덩이에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치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세를 바꿔 좀 더 언니 쪽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부딪힌다. 창문으로 뒤를 봤다. 어떤 남자가 바짝 붙어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아~~~ 악!!!!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이동했다. 올케언니가 나를 다독이는 중 마침 지하철은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고 그 남자는 뛰쳐나갔다. 나는 엉엉 울었다. 겨울이었고 곧 6학년이 되기 전 해였다. 발육이 빨랐던 나는 뒤에서 보면 적어도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겨울이라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어서 어쩌면 성인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이 겪기에 힘들었던 이 사건이 나의 지하철 첫 경험이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은 매일 타야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 지하철을 타면  늘 뒤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수원으로 학교를 다녔던 나는 꽤 긴 시간 지하철을 타야 했고, 1호선은 참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 지하철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꽤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트라우마를 벗게 된 건 친구와의 '지하철 타기'를 하면서부터였다.  

나보다 학번은 위였지만 나이가 같았던 친구가 있다. 학교에서 마음 맞는 친구가 없어 한 학기를 힘들어하다 만난 친구다. 짧은 시간에 꽤 강렬하게 친해졌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지금도 몇 안 되는 대학 친구 중 한 명으로 남아있는데 그녀와 나는 지하철 타는 것을 즐겨했다.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던날, 수업 없이 비는 시간, 휴일에도 만나면 4호선을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수업 땡땡이가 가장 많았지 않았을까? 호호호^^) 왜 그렇게 4호선을 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둘 다 4호선으로 집에 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혹은 그 당시 4호선이 가장 깨끗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 4호선 혜화역 -

종점에서 종점으로 이동하며 수다를 떨었다. 20대 여자 둘이서 할 이야기는 끝도 없었다. 지금도 창밖 풍경(4호선은 종점에 가까워질수록 밖으로 나온다.)과 지하철 사람들 섞인 장면이 아련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지하철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조금씩 사라졌다.


'지하철'하면 떠오르던 '두려움'이 '친구'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한 번씩 그 친구가 떠오른다. 미국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 못하지만, 한 번씩 떠오르니 마음속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지하철'을 보는 시선, 그것은 내게 '우정'이다.





며칠전부터 이 글을 쓰며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 브런치에 발행하려고 글을 올리는 중 마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더없이 반가웠다. 잘 살아가고 있다니 다행이다. 잘 살아내보자! 지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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