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 생신 모임에 드렸어야 할 선물을 며칠 전에서야 찾았다. 미리 주문을 했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지내다 깜빡 잊고 말았다. 주문 후 일주일이 걸린다는 목걸이를 생신 모임 전날 떠올렸으니 종로를 나가지 않고서는 당일 만들어낼 재주가 없었다. 결국 선 파티 후 게으름을 좀 더 피우기로 했다. 그리고도 한참 지나서야 선물을 찾아왔다.
매달 회비를 내는 우리 남매는 돈을 모아 엄마 생신 때 현금과 선물을 해 드린다. 올해 선물은 미아 방지용으로 만드는 동그란 펜던트에 전화번호를 새겨 넣은 목걸이다. 아직 정정하시고 기억력도 좋은 분이지만 세월을 이길 장사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어떤 방법으로든 엄마 몸에 전화 번화 하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면 전화번호는 오빠, 뒷면 전화번호는 큰언니로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작은언니와 그것을 상의하다 큰언니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니 작은언니 번호를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참 큰언니냐 작은언니냐를 이야기 나누던 중 언니가 "너 전화번호를 넣어라."라고 했다.
이게 웬일?
내 평생 엄마 아빠 자식으로 이름을
내 건 적이 없는데 내 전화번호라니?
별것도 아닌 전화번호 하나에 무언가 들뜬 기분이 들었다. '누구네 엄마'의 그 '누구'는 언제나 오빠와 큰언니였다. 가끔 작은언니, 막내언니 이름도 통하긴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막내라고 하면 언제나 막내 언니 이름이 나오는 친척들, 동네 사람들. 심지어 아빠도 나를 막내언니 이름으로 부르다 돌아가셨으니 나의 존재는 어디서 인증을 받아야 하나요?
그런데 엄마 목걸이에 내 전화번호라니! 작은언니 말을 듣고 덥석 받아 들었다.
"내가 그래도 되나? 그럼 그럴까? 내 인생 처음으로 엄마한테 이름 한번 올려보는 거야?"
두 번 묻지 않고 오빠와 내 번호를 새겨 넣기로 했다.
물건을 받고, 내 전화번호가 적힌 엄마의 펜던트를 보고 있자니 이제 한번 '희정이네 엄마'를 가져보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혼자서 가슴 뭉클했다. 운동 나가는 길에 찾은 목걸이를 들고 걷는데 남편이 들어주겠다고 했다. 말은 손가락 불편한 당신보다는 내가 낫다고 했지만 속 마음은 내가 들고 다니고 싶었다.
‘내 전화번호’가 적힌 엄마의 펜던트에 ‘내 온기’를 넣어주고 싶은 기분.
어서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더운 여름 엄마는 방문을 거절하고 계신다. 서로 더우니 이 더위가 지나고 나면 만나자는 것. 아직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니, 그동안 자주자주 목걸이를 만져서 온기를 넣어둬야겠다.
내 전화번호가 새겨진 엄마의 목걸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