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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Aug 02. 2018

마음 따뜻한 추억, 떠올려 보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서랍을 뒤져 손으로 써 내려 간 쓰다만 시집 노트와 '한벗' 동아리 산문집을 찾아보았다. 그것들은 내 10대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대변하는 물건들이다. 오랜만에 보니 새삼 옛 추억이 떠올라 한참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순수한 글씨, 글감, 내용들이 옛 추억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선배들이 교내 동아리 홍보에 열의를 보였다. 그중 문학동아리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주저 없이 이름을 적고 멤버가 되었다. 그 동아리는 내가 다닌 여고와 시내 다른 남고와의 연합동아리였다. 여러 동아리 중 가장 멤버가 많았고 활동도 가장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합 동아리답게 이성에 관심을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고, 실제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대부분 결국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만 남긴 했지만 처음에는 참 많은 인원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아리 활동 규칙은 매월 산문이나 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선배들이 읽어보고 괜찮다 판단되는 글들은 산문집에 실려 작은 책자로 배포되었다. 산문집이 인쇄되어 나오는 달은 정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그 달에 실리지 못하면 경쟁의식이 생겨 글을 더 쓰게 되고 내 글이 실린 달은 읽고 또 읽곤 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남산 잔디밭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신의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수줍음 많은 10대였던 시절, 선배와 동기들 앞에 어설픈 글을 낭독하는 일은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발표하려고 일어나면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들었고 다 읽고 나면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일은 말릴 재간이 없었다.


봄가을에는 체육대회도 했다.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 시절 추억들. 늘 교복만 입다가 주말 모임에 사복을 입고 나가야 할 때, 입을 옷이 없어 언니들에게 용돈을 받아 들고 옷을 사 입고 나갔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 교통비 쓰며 시내 나간다고 엄마께 꾸중도 참 많이 들었다.


그렇게 1학년 겨울이 되었다. 연말에 시 전시회와 낭송회를 하는 것이 동아리 전통이었다. 자신의 글을 전시하고 그중 몇 명은 시 낭송을 하는 행사였다. 너무 흥분됐다. 이런 행사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와서 읽고 들어준다는 것이 너무 설레었다.


행사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회와 낭송회를 할 장소를 빌리는 일이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3학년 선배가 아빠 찬스로 해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일을 준비하기 위해 선후배가 섞여 행사비 마련 팀, 기획 팀으로 나눴다. 나는 선배의 선배들에게서 배워 내려온 전통에 따라 시내 상점에 들러 동아리 취지와 무엇을 할 것인지 설명하고 지원금을 받아 내는 일을 했다. 내 인생 첫 '영업'이라고 해야 하나? '투자유치'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부끄러워 선배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1학년도 스스로 알아서 해 보라며 뒷짐 지고 서서 내 모는 선배들 덕분에 며칠이 지나자 녹음한 듯 입에서 영업 멘트가 술술 새어 나왔다. 결국 조금씩 조금씩 후원금을 모아 행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몇 주 동안 모든 멤버들의 고군분투로 행사를 위한 기본 세팅은 되었다.


본격적인 행사 준비가 시작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시를 선별하는 일은 각자의 글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을 골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1년 동안 꽤 많은 글들이 있었고 그중 내가 선택한 시는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을 읽고 쓴 시였다.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파 눈물을 엄청 흘렸던 감정을 글로 쓴 작품이었다.


시 전시 작품은 스티로폼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그 위에 직접 글과 그림을 그려 완성한 흰색 보드지를 붙여 마무리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서 스티로폼으로 제작된 자신들의 시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벽에 걸었다. 행사 순서가 적힌 안내장도 인쇄되어 입구에 배치하고 무대 위 의자, 청중들의 의자들도 정리됐다. 사회는 말 잘하는 2학년 선배들이, 기타는 꽃미남이 속해 있던 3학년 3인방 선배들이, 손님 안내와 잡무는 1학년이 담당이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었다. 일단 시내에 사는 친구들 부모님과 지원금을 내 주신 상점 사장님들이 와 주셨고 친한 친구들도 참석해서 우리를 응원해 줬다.


그렇게 행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전시된 시를 감상할 시간을 두고 잠시 후 시 낭송회를 시작했다. 시를 낭송할 때는 기타로 배경음악을 깔고, 다른 시를 낭송하기 전 연주와 노래를 넣어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만들었다. 눈이 내렸고, 준비한 장소는 추웠지만 행사 열기만은 뜨거웠다. 특히 시 낭송을 하고 나니 등에 땀이 흘러 추운 겨울 날씨가 감사할 정도였다.


그렇게 짧고 굵은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친구들이 꽂아준 장미꽃과 시가 적힌 스티로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따뜻함과 뿌듯함의 무게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었다. 오랜 여운을 남긴 행사였고 다음 해에도 같은 행사가 이뤄지길 기대하던 밤이었다.


3년을 꼬박 동아리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꾸준히 글을 쓰고 산문집을 기다리고 남산에서 모임을 했다. 연말 발표회는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지만 다음 해에는 선배들이 준비하자 말해주길 기다렸고 우리가 최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었지만 준비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졸업 후 후배들이 소식을 가끔 전해왔고 동아리 전체 연락처 수집을 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 연락이 안되어 동아리 활동 소식도 선후배들 소식도 알 수 없어졌지만 지금도 무엇이 되었든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내어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최근 브랜딩 강의를 다녀왔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성과를 내며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다 동아리 활동이 생각나 서랍을 뒤져 보았다. 순수했던 여고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니 가슴이 뭉클해왔다.


마음 따뜻한 여고시절의 추억. 떠올려 보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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