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생태공원 산책
태양이 미처 내려가지 않은 주말 초저녁, 오랜만에 생태공원 흙길을 걸었다. 평일 운동 나가는 시간은 이미 날이 어두워져 가로등이 없는 이 길을 걸을 수가 없다. 주말에도 뜨거워 이른 시간에 나가지 못했으니 오랜만의 산책이다.
우리는 생태공원 '흙길'을 좋아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신발에 흙이 묻어나는 것이 싫다는 이들도 있다. 우리 부부는 늘 시골에서 땅을 밟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흙길을 좋아한다. 지금은 철조망이 쳐지고 가시덤불이 무성해 보호 구역 안을 볼 수 없지만 십여 년 전,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에는 무성하지 않은 나무들 사이로 생태습지 안도 훤히 보였다. 그 속은 현실과 달라 영화 아바타의 한국 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산책로를 걷다 샛길로 나가면 한강을 보고 앉을 수 있다. 그곳에 있으면 아무런 고민도 걱정도 없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지는 태양이 쏟아내는 마지막 정열을 볼 수 있는 한강. 그곳에 앉아 있으면 힐링이 된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지 눈을 감고 듣으면 튀김 소리 같기도 하고, 빗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대로 들을 수 있다.
한적하고 고요한 주변, 그곳에 앉아 있으면 가끔 생태 숲에 뛰어놀다 나온 사슴을 보기도 한다. 사슴과 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동물의 이름은 모르겠다. 표지판에서 읽었는데 잊어버린 이름.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그 아이가 우리를 힐끗 보고 다시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서울에서 느끼기 힘든 장면이다.
이곳은 포장된 도로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 한적하다. 나무들로 둘러싸여 바람이 많고 숲의 소리가 난다. 주말이면 늘 찾아가던 곳인데 몇 주 동안 갈 수 없었던 곳. 오랜만에 나가 보니 마음이 씻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이란 역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가졌다. 뜨거운 태양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하면 가을의 생태 숲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기다려진다. 우리의 힐링 명소, 생태공원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