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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16. 2018

"너의 통금은 9시야!~"  "왓???!!!"

"노트북 전원이 안돼. 이거 어디서 사?"

"비밀번호를 못 찾겠어. 어떻게 찾아?"

"누가 보내서 파일을 받았는데 안 열려!"


뜬금없다. 막내 언니는 나를 자신만의 독점 고객센터로 생각하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더 자세히 더 빠르게 알려 줄 사소한 정보도, 실제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물어봐야 할 내용도 무조건 나한테 전화하고 본다. 심지어 자기 집 집들이 음식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언니가 앞뒤 자르고 전화해 질문을 던질 때면 크게 심호흡하고 친절하게 대하느라 애를 쓴다. 


언니보다 한참 어렸고, 철없던 내가 '젊은 언니를 힘들게 한 '을 갚는 심정으로...


스무 살, 서울로 올라오면서 막내 언니와 같이 살게 됐다. 서울도 왔겠다, 성인도 됐겠다,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 들떴었다. “나 오늘 늦어~”하며 쿨하게 등교하는 모습을 상상하던 내게 언니는 말했다.


너의 통금은 9시야!

“왓???!!!”


화려한 서울 생활에서 통금이 9시라니?!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협상의 여지없는 9시. 통금 시간이 넘으면 10분에 한대씩 빗자루로 허벅지 맞기를 통보받았다. 성인인 나를 이렇게 대해도 되느냐 저항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다른 가족들 모두 막내 언니 편이었고, 땡전 한 푼 없이 그 집에 얻혀 사는 신세이니 집주인(!) 룰을 지키라는 답변뿐이었다. 막내 언니와 잘 지내다 나오면 받아주겠지만 쫓겨나서 올 때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엄포와 함께였다. 휴우~


막내 언니와 살던 집은 사당역과 총신대입구역 중간쯤이었다.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건널목이 없는 사당역이 빠르다는 것을 파악하고 사당역에 내려 빛의 속도로 뛰어갔다. 그래서 내 다리가 굵어졌나 싶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 언제나 언니가 서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와도 뛰는 나를 볼 수 있는 딱 그 자리, 오거리 빵집 앞이었다. 30분이 넘지 않는 날이면 맞지 않아도 됐고 뛰는 열의를 보여준 것으로 용서가 됐다. 언니가 어쩔 수 없이 늦는 날은 9시에 집 전화로 귀가 확인 사살을 했다. 뭐, 대부분의 날들을 뛰었다 봐야 한다. 


'그냥 맞고 말지 뭐'하며 놀다 들어간 날도 꽤 많다. 가장 큰 사건은 동네 카페에서 밤 12시까지 알바를 했는데 끝나기 10분 전에 언니가 늘 나를 데리러 왔다. 그날은 손님이 없어 30분 일찍 문을 닫게 됐다. 때는 이때다 싶어 '오늘은 그냥 맞자' 하고 새벽 1시가 넘어 들어갔다. 언니는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 엉엉 울면서 빗자루로 온몸을 때렸다. 좀, 못된 동생이었음을 반성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아팠음도 기억한다.


한참 놀고 싶던 스무 살의 나를, 본인도 놀고 싶은 20대 나이였음에도 사생활을 포기하고 학생 신분을 탈출할 때까지 챙겨 줬었다. 작은 언니와 살 때는 밤늦도록 안 들어와서 걱정을 끼치고, 주말에는 얼굴도 못 보고 지낼 정도로 바깥 활동을 하더니 도대체 왜 일찍 들어와 나를 잡냐 반항도 많이 했다. 당시에는 나이차가 나는 언니가 늙어서(?) 일찍 귀가한다 생각했다. 진심. 내 나이 때 얼마나 놀았으면 나이 들어 저렇게 동생한테 집착하나 싶어 언니를 미워도 했다. 20대 청춘이었던 언니가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을지, 그걸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 역시 그 나이를 지나면서 겨우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늙어서' 잘 모르는 언니의 전화를 받는다. 가끔 '이건 아니잖아' 싶은 질문을 할 때는 짜증이 나려 한다. 그럴 땐 '빗자루로 허벅지 때리는 심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래. 이게 뭐라고, 언니가 모른다는데, 시간을 내자. 마음을 가라 앉히자.'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려준다. 


나이 듦과 기술에 대한 적응력은 반비례한다. 그것은 언니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룰이다. 그럼에도 "젊은 네가 도와줘야지"라고 말하는 언니의 말에 선뜻 거절하기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을 참았을 20대를 돕지 못했으니 나이 들어 어렵지만 뭐라도 해보겠다는 언니를 도와주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언니의 전화를 받고 차분히 설명하려 노력(!)한다.  


"아니 아니, 지금 내가 메신저로 보냈다니까! 아니 브라우저 열지 말고! 그래 메신저 메신저! 지금 메신저로 보내 준 URL을 클릭하면 이런 화면이 나와. (화면 캡처본 전달) 거기서 다운로드를 클릭해. 다운로드하면 이렇게 하단에 보일 거야. (화면 캡처본 전달) 그걸 클릭하면 프로그램이 깔려. 100%라고 뜨잖아. 그럼 프로그램이 다 깔린 거야. 그리고 친구가 보내준 파일을 클릭해. 그럼 열릴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뭐? (그...그래..) 자. 다시~다시~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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